스피커

프로악 리스폰스 D38 스피커 (리뷰대여)

raker 2023. 5. 28. 09:01

2005/06/11

프로악의 리스폰스는 영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하이엔드급 스피커 라인 중에 하나로 꼽을만하며 같은 가격대에서 가장 성공적인 스피커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8년 가까이 꾸준하게 인기를 누려온 리스폰스 시리즈도 점진적으로 변해온 오디오 환경 앞에서 어떤 식으로든 변신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 당시의 영국 스피커는 어두운 소리를 가지고 있다거나 불분명한 소리를 내는 것이 결정적인 흠이 아니었다. 오히려 미덕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CD플레이어가 내뿜어내는 거칠고 이상한 소리들을 그대로 다 내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적당히 제한해서 들려주는 편이 더 견디기 좋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녹음기술과 음반의 가공에 대한 인프라와 기술이 발전하고 CD플레이어에서의 일어난 점진적인 발전은 이런 구시대 스피커의 성공모델을 개정하기를 요구하게 되었다. 여러 영국제 스피커는 이런 결정의 순간에서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오고 있다. 이번 리뷰를 통해서 프로악은 어떤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확인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새로 바뀐 리스폰스 시리즈는 D100, D80, D38, D25, D15, 1SC로서, 가격대와 규모별로 다양한 모델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소개할 리스폰스 D38은 트위터와 우퍼로 구성된 2 웨이 모델 중 최상위 기종이다. 그리고 아마도 필자가 아는 범위 내에서 가장 큰 크기와 가장 큰 규모의 소리를 들려주는 2 웨이 모델이 아닐까 싶다. 제품이 차지하는 바닥 면적이 신문의 반면 정도가 되므로 그 크기가 쉽게 짐작될 것이다.

D38은 기존 세대의 모델과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새로 만들었다. 크기면에서만 종전의 제품 리스폰스 3.8과 비슷할 뿐 유닛도 다르고 네트워크 설계도 3 웨이와 2 웨이로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베이스 포트의 위치, 감도의 차이 등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다.
기존의 리스폰스 시리즈가 사용했던 스캔스픽의 소프트 돔 트위터 대신에 신형 리스폰스 시리즈는 덴마크제 D.S.T사의 소프트 돔 트위터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 시리즈에서 스캔스픽의 9인치 카본 파이버 콘을 이용한 우퍼나 ATC의 7인치 우퍼를 사용하던데 비해 신형에서는 볼트의 6.5인치 폴리프로필렌 콘을 이용한 우퍼를 사용하고 있다. 볼트란 낯선 이름 때문에 왠지 서먹서먹한 느낌이 들 텐데 이것은 PMC 산하의 유닛을 판매하는 부문의 브랜드 네임이라고 한다.

리스폰스 3.5는 베이스 포트를 앞에 두었고 3.8은 뒷면에 배치했었는데 D38에서는 바닥을 향해 뚫어놓았다. 바닥을 향하는 베이스 포트는 설치장소의 구애를 덜 받게 되는 장점이 있다.
크로스오버는 프로악 고유의 여러 개의 선재가 꼬여있는 무산소 멀티 스트랜드(multi-strand) 케이블을 이용하여 연결하는 방식의 독자적인 HQC(High Quality Crossover) 디자인으로 새롭게 구성되어 있다.
캐비닛은 25,22,18밀리미터 두께의 MDF를 적재적소에 사용했다.

처음 시청은 거실에 놓여져 있는 AV시스템에 연결해서 들어봤다. 이때의 인상은 푸짐하고 펑퍼짐하다는 느낌이었는데 다양한 곡을 듣다 보니 스피커의 문제가 아니라 같이 물려놓은 시스템의 문제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소니 NS900V DVD/SACD플레이어의 아날로그 출력이 성에 차지 않아서 디지털 출력으로 JVC AX-8000 AV리시버의 내장 DAC를 연결해서 듣고 있었는데 이때 연결했던 디지털 케이블이 소리를 많이 무르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날로그 출력으로 바꿔서 들어보면 언제 그런 소리가 났었나 싶게 완연히 다른 소리를 선보인다.

생동감이 느껴지는 생생하고 신나는 소리가 나와준다. 대규모 곡에서도 상상으로 메꿀 필요가 없을 정도로 크고 박력 있고 실감 나는 재생이 가능하다. 칼 오르프 작곡의 카르미나 부라나(텔락, SACD-60575)의 오프닝 부분을 이만큼 소스라치도록 강력하게 들어본 기억이 별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마치 두 스피커 사이의 가운데 부분 땅바닥에다 해머를 쾅하고 때려서 바닥이 쪼개지는 것 같은 강력한 충격이 느껴진다. 이런 압도적인 충격파를 느끼고 소리를 듣게 되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많은 무리를 받는 것 같다. 놀란 가슴이란 표현이 이럴 때 쓰는 게 적합해 보인다.

이런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2 웨이 스피커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내친김에 좀 더 이와 비슷한 류의 음악을 틀어봤다. 에이지 오 지휘,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레스피기가 작곡한 시바의 여왕 벨키스 조곡(레퍼런스 리코딩 RR-95CD) 중에서 전쟁의 춤이란 곡인데, 여기서도 연주회장에 육박하는 엄청난 박력을 느낄 수 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계속해서 펄떡거렸고 초저녁의 이른 시간이었지만 아랫집에서 항의가 들어올 수 있겠다는 불안감 때문에 오디오 가혹테스트 같은 곡은 그만 듣기로 하고 일반적인 음악 감상용 곡으로 바꿔서 듣게 되었지만 리스폰스 D38이 가로 세로 7미터, 4.5미터 공간을 꽉 채우는 다이내믹한 소리를 내주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확인하는 것은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연이어 들은 이반 피셔 지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드볼작의 신세계 교향곡(필립스 470 617-2 SACD)에서는 AV리시버의 음질 특색인 재빠르고 군더더기 없이 날렵하고 서늘하여 정신이 바짝 들게 만드는 소리를 들려준다. 앰프의 음질 특색이 가감 없이 들린다는 점에서 스피커가 주장하는 왜곡된 소리가 최소화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파트리샤 바버의 modern cool앨범(MFSL, UDSACD2003)에 수록된 company란 곡을 틀어서 드럼의 소리가 어느 정도로 단단하게 들리는지 확인해 보면 틸 1.6이나 카시오페아 음향의 델타 2 정도로 딱 부러진 소리를 내주는 편은 아니지만 틸 2.4 정도의 수준으로 적당한 탄력을 갖추는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들어보려고 방으로 옮겨서 마크레빈슨 383L 인티앰프에 걸어 들어봤다. 그런데 볼륨을 올려보아도 소리가 트이지 않는다. 성악곡을 들어보면 전날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처럼 호흡이 흔들거리듯 불안하게 들린다. 카르미나 부라나에서는 위압적인 저역이 나오지도 않는다. 스피커의 부하에 맞게 앰프에서 적절하게 대응해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스피커에 있어서 앰프의 매칭은 중요한 점이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보는 것이 좋겠다. 리스폰스 D38을 비롯하여 D80, D100과 같은 대형제품은 음을 좀 더 쉽게 방안에 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저역 또는 중역 드라이버를 각기 두 벌씩 사용했다. 이 두 벌의 유닛은 병렬로 연결되면서 임피던스는 4옴이 된다. 한편 유닛을 한벌씩만 사용하는 D25, D15, 1SC의 경우는 임피던스가 8옴이다.
유닛을 두 벌 채용한 결과로 임피던스가 낮아졌으므로 앰프의 입장에서는 부담을 떠안은 셈이다. 하지만 반대로 앰프의 구동력이 좋다는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작은 출력을 갖고 있더라도 이 덩치 큰 스피커를 큰 소리로 울릴 수 있다는 얘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제품에 매칭시킬 앰프는 큰 출력이 필요하다기보다는 구동력이 있는 앰프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구동력을 갖춘 앰프란 8 오옴에서의 출력이 4 오옴에서는 두배로, 2 오옴에서도 다시 2배가 되는 것을 뜻한다. 출력이 큰 앰프라고 하더라도 구동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많다. 진공관 앰프의 경우는 출력 트랜스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위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 없다. 하지만 프로악에서는 리스폰스 D38 제품 설명서에서 잘 만들어진 클래스 A 증폭방식을 사용한 소출력 앰프로도 다이내믹한 소리를 즐길 수 있게 했다는 점을 상당히 강조하고 있으므로 이 제품의 베스트 매칭 앰프는 출력의 작고 크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며, 증폭소자가 진공관이건 트랜지스터건 간에 클래스 A 증폭앰프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만일 브리지드 모노로 대출력 앰프를 구성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실 분도 계신다면 말리고 싶다. 들인 비용은 두 배가 되지만 위험은 이전보다 증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브리지드 모노 앰프는 출력만 높아지며 임피던스가 낮은 스피커에 대응을 잘하지 못한다. 가령 스테레오로 4옴까지만 버티는 앰프라면 브리지드 모노시에는 4 오옴짜리 스피커를 연결시키면 앰프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다시 스피커에 대한 얘기로 돌아오자면 리스폰스 D38스피커는 전체적으로는 프로악이 표방하는 사운드의 주장을 가급적 줄이고 하이엔드 경향의 스피커 대열에서 표방하는 정밀하고 디테일한 사운드 쪽으로 살짝 기수를 돌렸음을 알게 해 준다.

고역은 공기감이 돌며 듣기 싫은 거친 부분이 강조되는 일도 없다. 인클로우저의 크기가 있기 때문에 인클로우저의 울림이 재생음에 묻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으나 다행히도 리스폰스 D38은 그런 통울림 소리와는 그리 연관이 많지 않다. 인클로우저 제작 시 적절한 댐핑이 이뤄지도록 고려되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프로악이 주장하는 사운드가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다. 음색은 약간은 따뜻한 느낌을 주며 미국의 윌슨 오디오의 제품에 비하면 분명히 풍부하고 너그러운 편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음반의 녹음상태가 썩 좋지 않더라도 녹음이 잘못되었다고 즉각적으로 귀를 자극하며 알려주는 편이 아니므로 오랜 시간 동안 음악을 듣더라도 지치는 일이 생길 것 같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프로악은 미국제품이 추구하는 세계나 캐나다 제품이 추구하는 세계와는 아직도 다른 부분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리스폰스 D38은 음악을 재현하는 도구로서 부족함이 없을뿐더러 친근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오디오애호가가 좋아하는 테스트 음반을 잘 울려주면서도 지나치게 분석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전 제품에 비해서 녹음기술의 발달을 쫓아올 수 있는 현대적인 정밀성을 많이 쫓아가고 있다. 음악의 생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본능적인 페이스를 표현하는데 큰 무리가 있지 않다. 게다가 필요한 때 우물거리지 않고 막강한 힘을 낼 수 있는 야성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용자가 원하는 타입에 맞게 조련해서 사용하시면 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