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6
하이파이클럽에 기고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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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지언트 분해능 vs. 1백만 tap 프로세싱
애니메이션은 망막의 잔상을 이용한 것이다. 빛이 망막에 투영되면 상이 형성되는데, 망막에 투영된 상은 빛이 사라짐과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망막에 1/16초 동안 잔상이 남아있게 된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의 눈으로 판독할 수 있는 최소의 시간단위는 1/16 정도이다.
따라서 1초 동안에 수십 장의 그림을 조금씩 바꿔 보여준다면 우리는 그림들을 보면서 ‘움직임'을 느끼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사람이 귀로 판독할 수 있는 능력에 맞춰 소리의 데이터를 샘플링하여 수록해 두었다가 재생할 때 조금씩 변화하는 데이터를 펼쳐내면 우리는 ‘소리의 크기’와 ‘음높이’를 느낄 수 있게 된다.
CD에서 사용하는 디지털 오디오 규격은 가장 작은 소리에서부터 가장 큰 소리를 6만 5천5백3십6 (2의 16승) 단계로 구분하여 저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데이터를 1초 동안에 4만 4천1백 번 펼쳐냄으로써 20Hz에서 20kHz에 이르는 주파수 대역의 소리를 재생시킬 수 있다.
한편, 1981년, 당시 전자 공학 석사과정에 있던 Rob Watts는 CD재생 시스템을 그가 별도로 연구하고 있던 심리 음향 관점에서 분석해 봤다. 그 결과 CD로 소리는 낼 수 있겠지만 음질은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그가 그렇게 예측한 근거는 사람은 트랜지언트 인지능력을 통해 공간을 인지하고 소리의 피치와 음색을 인지하고 있는데, 디지털 오디오 신호를 아날로그 오디오 신호로 변환시키는 과정 중에서 리컨스트럭션 필터에서 발생하는 타이밍 에러가 사람의 트랜지언트 분해능보다 큰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디지털 오디오 재생으로는 공간, 소리의 피치, 음색 표현이 자연스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만약에 디지털 오디오 신호를 인터폴레이션 할 때 발생하는 트랜지언트 타이밍 에러의 수준을 사람의 트랜지언트 분해능 이하로 낮출 수 있다면 CD의 재생 음질이 문제가 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서 Rob Watts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트랜지언트에 대한 분해능 수준(4 마이크로 세컨드) 보다 낮은 수준의 트랜지언트 타이밍 에러를 달성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계산능력이 필요한지 계산했다. 16비트 리컨스트럭션 필터가 1백만 tap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슈퍼컴퓨터급에서나 그런 처리능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 이후에 Rob Watts가 Chord에서 디지털 디자인 컨설턴트로서 완성도 높은 디지털 오디오 재생 시스템을 개발하게 되었을 때 리컨스트럭션 필터를 향상하기 위해서 특별히 노력했다. 1999년 첫 제품으로 나온 DAC64의 경우 1,000 tap만 처리할 수 있었지만, 2008년 QBD76 때 18,000 tap으로 늘렸고, 2015년 Dave에서 164,000 tap을 처리할 수 있었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공간 정보와 음색을 재생하는 능력이 향상되긴 했지만 DAC 자체에서 1백만 tap을 구현하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DAC에서 1백만 tap을 프로세싱할 경우 그로 인해 음질이 희생되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프로세싱에 제한을 두어야 했다. 그 대신에 DAC 앞단에서 1백만 tap을 다루기로 결정했고, 2017년 Chord Blu Mk. 2 M Scaler CD Transport에서 1백만 tap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Chord Blu Mk. 2 M Scaler CD Transport는 이전과 다른 공간감, 분리도, 투명도, 해상도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렇지만 이 제품은 CD를 재생할 때만 능력을 발휘한다는 제한점이 있다. 음악 파일 재생이나 스트리밍 사용자들은 먼발치서 바라만 봐야 했다. 그래서 CD Transport를 제외하여 가격을 낮추고 Hugo TT 제품과 어울리는 케이스에 맞게 제품화시킨 것이 Hugo M Scaler다. Hugo M Scaler는 Chord사의 DAC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DAC와 사용할 수 있다.
Hugo M Scaler 소개
Hugo M Scaler는 BNC S/PDIF 입력 2개, 옵티컬 입력 2개와 USB Type-B 입력을 가지고 있다. 이때 USB 입력은 전류가 흐르지 않도록 분리시켜서 (galvanic isolation) 전기 신호만 받아볼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연결한 USB 케이블은 5V DC전류를 통과시킬 수 있어야 한다
USB 입력을 통해 DOP모드와 native모드로 DSD 256 디지털 오디오 신호와 PCM 768kHz 디지털 오디오 신호를 처리할 수 있다. Mac OS X와 리눅스 운영체제 환경에서는 드라이버 설치 없이 바로 USB 연결이 가능하며, Windows 운영체제를 환경에서는 드라이버를 설치해야 USB 연결이 가능하다. DSD신호는 업샘플링한 후 DSD 고유의 노이즈와 디스토션을 훨씬 더 줄인 특수 필터링을 통한 후 PCM 신호로 변환시켜 출력한다.
Hugo M Scaler는 옵티컬 출력, S/PDIF 출력, 듀얼 BNC S/PDIF 출력을 제공한다. 듀얼 BNC S/PDIF 출력에는 전류가 흐르지 않도록 분리 (galvanic isolation)시켰다. 싱글 BNC S/PDIF를 통해서 최대 352.8kHz로 업샘플링한 디지털 오디오 출력을 전송하며, BNC S/PDIF 케이블 두 벌을 연결하는 듀얼 BNC S/PDIF를 통해 최대 768kHz로 업샘플링한 디지털 오디오 출력을 전송할 수 있다.
M Scaler는 tap 계산에 필요한 시간에 해당하는 버퍼를 채운 후에 소리가 나오게 된다. 이런 과정은 음악을 재생할 때는 문제가 없으나 블루레이 플레이어에 연결해서 재생할 때는 버퍼에 오디오 데이터를 채우는 시간 차이로 인해 영상과 오디오의 싱크가 맞지 않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제품의 제일 왼쪽에 위치한 Video 버튼은 이런 영상과 음성의 싱크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시간차를 줄이는 방법은 처리 tap 수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을 재생할 때 Video 모드에 두면 M Scaler의 최대 성능이 나오지 않을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영상을 재생하는 빈도가 높다면 영상 데이터 신호와 오디오 데이터 신호를 자동으로 선택하도록 설정해 두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OP SR 버튼으로 업샘플링을 설정할 수 있고, 원한다면 바이패스시켜 원신호대로 출력하는 것도 가능하다. 바이패스를 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전기적으로 아이솔레이션 시킨 BNC 단자에 연결했다면 원신호에 비해서 다듬어진 소리가 나올 수 있다.
제품의 오른쪽에 있는 DX 버튼은 코드사의 후속 제품에서 사용할 용도로 만들어 둔 것으로 현재는 아무 기능도 할당되어 있지 않다.
전원은 15V DC 입력을 받아 동작하며 제공 파워 서플라이는 스위칭 모드 파워 서플라이다.
연결 시스템
사용한 소스기기는 룬 코어로 뉴클리어스 플러스, 음악파일 스토리지와 룬 엔드포인트로 브라이스턴 BDP-2, DAC로 Chord Hugo TT2 DAC를 사용했다.
그리고 네트워크 시스템은 ipTIME A5004NS 유무선 공유기, Aruba 2530-8G 스위칭 허브, 고정밀 클럭 옵션 보드 sCLK-ES가 장착된 SOtM sNH-10G 스위칭 허브를 사용했다.
브라이스턴 BDP-2와 Chord Hugo M Scaler 사이에 USB 케이블로 연결이 가능했지만 USB 케이블의 성능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USB 케이블은 사용하지 않았으며, 그 대신 IAD 보드가 장착된 브라이스턴 BDP-2와 Chord Hugo M Scaler 사이에는 Audience Conductor SE S/PDIF 디지털 케이블을 사용했다. Chord Hugo M Scaler와 Hugo TT2 DAC사이에는 Stereovox hdxv S/PDIF 디지털 케이블 2벌을 사용해서 Dual BNC로 연결했다.
들어보기
Hugo M Scaler의 설정을 DAC에서 처리할 수 있는 최대치로 업샘플링시켰을 때 저역이 좀 더 강렬하게 표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소리는 좀 더 포커스가 또렷하게 들린다. 그리고 톤과 질감이 더 분명해진다. 그에 비해 M Scaler의 업샘플링을 줄였을 때는 최대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얼버무리듯 유연해지고 뒤섞인 것처럼 들리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M Scaler의 업샘플링 기능을 바이패스 했을 때는 이렇게 둔한 소리로 듣고 있었던 건가 놀라게 된다. 리뷰는 업샘플링을 최대치에 해당하는 768kHz를 기준으로 했다.
2017년에 알파 리코딩에서 발매한 크쥐시토프 울반스키 지휘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24bit 48kHz, WAV파일)를 재생했을 때 각각의 악기가 내주는 소리는 톤과 다이내믹이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테스트 삼아 듣기 시작했는데 연주력이 좋은 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크쥐시토프를 정교하게 지휘해서 밀도 높은 연주를 해주는 바람에 첫 번째 파트가 끝날 때까지 딴생각 들지 않고 꼼짝없이 듣게 된다. 처음에는 함부르크 엘베 필하모니 그랜드 홀에 앉아서 연주를 들으면 이렇게 들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는 원초적인 에너지와 호흡에 빨려 들어가서 정신이 몽롱해지고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원시적인 제전에 참가한 것 같은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너무 놀라 삼복더위도 싹 잊어버릴 정도였다.
2018년에 프리마 클래식 리코딩에서 발매한 소프라노 마리나 레베카의 SPIRITO (24bit 96kHz, WAV파일) 앨범 1번 트랙에 실린 노르마 오페라 아리아 Casta Diva를 재생했을 때 공연장 바로 앞에서 노래하는 것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오페라 가수가 갈고닦은 발성은 엄청나게 파워풀해서 포르테를 오디오로 오롯이 재생하기 어려운데 소스기기의 다이내믹스 재현폭이 넓고 음색의 표현이 정교해서 무리 없이 재생할 수 있었다. 사람은 사람이 내는 소리에 매우 민감해서 오디오 재생장치에서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잡아낼 수 있지만 Hugo M Scaler와 Hugu TT2 DAC을 통한 노래는 어색한 부분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어 실연과 같은 소리처럼 들리게 된다.
Hugo M Scaler로 업샘플링 하면 재생음이 변화되는 것은 명백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확실한 것은 Hugo M Scaler의 업샘플링 재생 특성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구형 업샘플의 재생 특성과는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구형 업샘플러는 강렬함을 희생시키면서 재생음을 모호하게 하여 소리를 다듬어 주는 역할을 해왔다. 이런 구형 업샘플러는 거친 소리를 내주던 구형 DAC의 시대에는 서로 부끄러운 부분을 가려주면서 윈윈 할 수 있는 조합이 될 수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엄밀하게 봤을 때 디지털 오디오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에러가 늘어났을 때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며 현실에서 멀어진 의미 없는 허망한 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M Scaler로 업샘플링 했을 때 나오는 재생음은 DAC에 외장 클럭을 달았을 때의 재생음 특성과도 확연하게 차이점이 있다. 외부 클럭을 연결했을 때의 재생음 특성은 좁은 범위에 대해서만 치밀한 소리를 내줄 뿐이지 넓은 대역에 걸쳐 골 고르게 개선시키지도 못하고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지도 않다. 이것 역시 엄밀하게 봤을 때 디지털 오디오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에러가 늘어났을 때 (노이즈 모듈레이션을 증가시킴)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일 뿐이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 오디오의 세계에서는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에러가 적어질수록 그리고 노이즈가 적어질수록 소리의 포커스가 분명해지고 저역은 무게를 가지고 단단해지고 다이내믹 레인지는 넓어지게 되는데, Hugo M Scaler야말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에러가 적어졌을 때 나타나는 재생음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마무리
디지털 오디오는 생겨난 이후로 계속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지만, 새로운 기능이나 입력장치가 추가되는 제품을 찾기는 쉬워도,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마다 기존의 제품을 질적인 면에서 큰 폭으로 뛰어넘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를 찾기는 드물다. 하지만 Chord사는 새로운 디지털 오디오 제품이 나올 때마다 놀라운 발전을 보여주었고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1백만 tap을 처리하는 Hugo M Scaler를 통해서 공간감이 향상되고, 분리도가 향상되고, 투명도가 향상되고, 해상력이 늘어나고, 다이내믹 레인지 재생 폭이 커졌다. 그리고 저역은 힘 있고 풍부하면서도 빠른 페이스로 재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모든 특성들이 어우러지면서 재생음에서 현장감을 느끼기 쉬워졌고 음악에 몰입하기 쉬워졌다.
Hugo M Scaler는 디지털 오디오 재생 체인의 게임 체인저라 불러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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