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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5
위 음반에는 폴리나 레스첸코를 비롯하여 마르타아르헤리치 그리고 바이얼리니스트와 첼리스트 등이 골고루 등장합니다.
일반적인 독주앨범의 스타일이 아니라 작은 음악축제 프로그램에 실려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선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음반을 구입할 당시에는 폴리나 레스첸코의 리스트 앨범을 들어보기 전이어서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이름을 보고 구입하게 되었지요.
마르타아르헤리치의 연주를 SACD로 들을 수 있게 되다니... 그리고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후원하고 있는 폴리나 레스첸코라는 연주자는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소나타 7번을 연주한다고 하니... 이 정도만 되어도 나머지 프로그램을 고려할 필요도 없고 망설일 이유도 없는 거지요.
첫 곡은 피아노 2대로 연주하는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1번이 실려있습니다.
연주면에서는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1번 연주에서 어느 파트를 마르타아르헤리치가 했고 어느 파트를 폴리나 레스첸코를 맡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게 했습니다. 힘든 부분은 폴리나에게 맡기고 죽죽 뻗는 부분은 마르타아르헤리치가 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녹음 퀄리티 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다이내믹 레인지가 줄어들었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디테일 표현이 취약했고 공기감이라고 해야 하나 잔향이라고 해야 할 부분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게 아쉬웠습니다. 스튜디오 녹음이라 연주장에서 녹음한 것 같은 자연스러운 잔향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디테일이라도 잘 표현되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스튜디오의 내부가 흡음이 과도한 건 아니었나, 마이크 줄의 캐패시턴스가 높은 걸 사용한 건 아닐까, 앰비언스를 집어넣는 마이크를 설치하지 않은 걸까 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밖에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던 중에 곡이 끝났습니다. 소리를 듣다가 딴생각이 많아지게 한 건 소리가 안 좋다는 거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피아노 연탄버전은 오케스트라 버전에 비해 짧은 것처럼 느껴지네요.
그다음 곡은 대망의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소나타 7번이 되겠습니다.
첫 시작부터 맹렬한 기세입니다. 경마장 출발선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경주마와 기수처럼 시작하자마자 기선을 장악하기 위해 냅다 내달리는 듯했습니다. 벤허의 유명한 전차경주씬이 연상이 되는 장면입니다. 서구의 피아니스트 중에는 이런 과감한 시도를 한 경우를 보지 못했는데 그런 점에서 폴리나 레스첸코는 역시 러시아 피아노 스쿨의 기질이 흐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페이스와 기선을 제압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약간 당황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세에 선빵을 얻어맞은 듯이 아드레날린이 확 분출되는 사람도 있겠고 연주에 맞춰서 호흡을 따라가려다가 놓친 사람은 연주자가 미친 듯이 서두른다며 불평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연주를 그르친다고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듣는 사람의 감수성이 인화성이 강하냐 약하냐, 신체 리듬이 빠른 페이스를 쫓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음의 악센트를 노골적이고 공격적으로 싣는 것에 동의하고 익숙할 수 있느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폴리나 레스첸코의 피아노 연주는 반지의 제왕에 나온 캐릭터 중에서 아라곤이 연상되었습니다. 사교성은 없고 과묵하나 과감하고 용감하고 전투능력이 탁월하지요.
그런데 처음부터 인화성이 높아서 그런 걸까 2악장을 듣는 중간에 페이스를 놓치고 잠시 정신을 놓게 되었는데... 다시 정신이 퍼뜩 들어서 듣다 보니 한창 곡의 종반을 향해 치닫고 있더군요.
아래 음에 해당하는 건반을 다루는 부분의 엄청난 괴력에 감탄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깨끗하고 선명하게 분출하는 고역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윗부분은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치고 있고 아랫부분은 폴리나 레스첸코가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와 종결부에 다다를 때까지는 어떻게 해야 두 사람이 이렇게 팀워크가 잘 맞을 수 있나 하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홀린 듯이 듣고 있었는데요. 곡이 다 끝나고 나서야 다시 정신이 되돌아왔습니다. 아차차, 이 곡은 마르타아르헤리치와 폴리나 레스첸코의 연탄곡이 아니라 폴리나 레스첸코의 독주곡이었던 겁니다! 분신술을 사용하지 않고서야 그런 연주를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혼자서 그런 컨트롤을 할 수 있다는 능력에 경악을 했습니다.
이 연주자의 다음 음반이 기대됩니다.
이 음반은 연주에서는 비범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녹음상태가 옥에 티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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