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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3
겉표지 사진의 중앙에 지휘자가 있고요 왼쪽에서부터 보이는 순서대로 뤼도빅 테지에(바리톤), 안나 네트렙코(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챠(메조소프라노), 라몬 바르가스(테너)가 보입니다. 실린 곡은 이탈리아, 프랑스 오페라 아리아입니다. 근래에 나온 성악 공연 타이틀 중에 가장 짜임새 있고 볼거리가 풍성했던 공연으로 꼽고 싶습니다.
이것 이외에 근래에 볼만했던 공연이라면 도밍고, 네트렙코, 비야존이 출연했던 The Berlin Concert가 있는데요. 볼거리가 많긴 했지만 그 이면에는 조심스럽게 크로스오버적인 접근을 해서 순수한 오페라 아리아를 좋아하는 취향의 사람들에게 집중력이 떨어지게 하는 프로그램상의 특색이 있었고요, 두 테너의 활약 또는 경쟁에 소프라노가 치여서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고 해야겠습니다. 스타급 성악가들끼리 모아 놓았을 때의 그런 불필요한 경쟁을 없애고 오페라에서 각 배역이 가지는 고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출연진과 곡을 구성한 것이 이번 공연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배역과 음역이 서로 달라도 정상급 성악가들을 모아놓다 보니 자신의 영역에서 불꽃 튀기는 실력을 발휘하며 다양성의 대결을 벌이더군요.
안나 네트렙코 하면 비야존이 따라 나왔을 것 같은데 그 대신에 라몬 바르가스가 출연하네요. 라몬 바르가스는 큰 공연에 긴장을 한 듯하여 무대 매너가 간간히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볼 수 있었지만 공연의 콘셉트상으로는 튀지 않는 적합한 캐스팅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비야존은 무대를 싹쓸이하는 무대매너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성악가들에게 심적인 부담을 많이 줬을 것 같고요) 라몬 바르가스는 노래를 잘 부르는군요. 소리 면에서 비야존이 바리톤스러운 면이 조금 있다고 한다면 바르가스는 좀 더 정통 테너에 가깝네요. 고역에서 쩌렁쩌렁 울린다기보다는 살짝 소프트하게 처리되는 경향이 있지만 성악가의 소리는 40대까지 계속 변한다고 하니 미래를 잘 지켜볼 가치가 있는 테너로 보고 싶군요.
엘리나 가랑챠는 기량이 뛰어나고 소리가 한참 좋을 때인 것 같습니다. 톤도 좋고 표현도 좋고 힘도 잘 컨트롤해서 오페라에서 메조소프라노배역에도 좋은 아리아가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기량이 떨어지는 메조소프라노 소리는 정말 들어주기 힘든데 기획자가 좋은 메조소프라노를 잘 캐스팅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뤼도빅 테지에 역시 기량이 출중하고 소리의 톤도 아주 훌륭합니다. 베일에 가린 것 같지 않은 분명한 톤을 가지고 있네요. 다만 이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검색해 보려 해도 그리 자료가 많지는 않은 편이었습니다.
안나 네트렙코는 이번 공연에서 자신의 실력과 끼를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도도하기도 하다가 애교스럽게 변신하기도 합니다. 앙코르곡으로 고른 레하르의 아리아는 그다지 유명한 곡도 아니고 독일어의 불리함을 가진 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자기의 앙코르곡으로 만들었더군요. 무대에서의 쇼맨쉽도 대단했고 무용을 가미해서 공연에 적합한 곡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공연이 끝날 때가 되면 기립박수를 쳐줘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나게 됩니다. 아주 환상적인 공연물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이 공연의 성공으로 이후에도 이런 유사한 공연이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이 공연물은 자막을 지원해서 오페라 아리아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게 해 줘서 좋았습니다. 가령 투우사의 노래 같은 것은 아주 박력 있고 다이내믹한 가사를 가지고 있어서 가슴이 같이 벌렁벌렁하게 하고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더군요. DVD에는 한글자막이 있다는 것이 장점이 되겠고 블루레이는 DTS-HD 5.1과 PCM 5.1 멀티채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블루레이 오페라/성악 공연물 타이틀 중에 중간 이상에 해당하는 음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에도 좋아 데모 타이틀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안나 네트렙코는 러시아, 엘리나 가랑챠는 라트비아, 라몬 바르가스는 멕시코 출신입니다. 오페라와는 왠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북방과 남방의 변방국가에서 치고 들어온다는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니 비야존도 멕시코 출신이로군요. 변방이라도 좋습니다. 계속해서 좋은 성악가들이 치고 들어와 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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