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24
얼마 전에 MBC에서 방영해 준 가수 비의 컴백 공연을 봤습니다. 움직임이 기계처럼 척척 잘 맞아떨어지고 절도와 파워가 느껴지는 퍼포먼스였습니다. 혀를 두르게 한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습니다. 서커스나 기계체조를 보면서 어떻게 사람이 저런 걸 할 수가 있나 하면서 지켜보게 하는 것과도 비슷한 긴장감과 경외감이 생기게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비의 안무와 동작은 공연을 보고 듣는 사람이 흥취가 느껴지도록 전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래도 놀라지 않을 거야?' 하는 식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려고 하기 위해서거나 내가 춤에서만은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식의 독기 서린 각오를 가지고 만들어진 퍼포먼스처럼 비칩니다. 제가 그 분야는 잘 알지 못해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비는 그런 댄스 스타일을 가지고 당분간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아시아권에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의 몸동작은 춤이 사람의 어떤 느낌을 전달해 주는 표현방식이라는 면에서 과시적이고 현학적이고 가식과 환상일 뿐이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람의 감정과 흥취를 전달하는 능력은 그의 스승에 미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영혼에 다가가게 하여 젖어들게 하고 흔들리게 하는 능력은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군요.
비는 정점에 올라서있는 상태입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고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세계의 사람들이 관심이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지금의 비는 약간 불안해 보입니다. 지금 그는 그를 발굴하여 지금까지 다양한 초식을 가르쳐왔던 박진영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박진영의 문화적 자양을 먹으면서 자라고 버틸 수 있었지만 독립한 비는 독자적인 문화적 자양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무르팍도사와 한 인터뷰를 보면 그는 배고파서 성공하고 싶었고 그래서 남보다 더 열심히 채찍질하고 기회를 만들어 왔다고 하는데... 심정적인 면에서는 이해할 수 있고 한국인의 심성에 호소력이 있을지 모르고 성공학 강사에게는 좋은 샘플이 될 수 있는 감동적인 실화겠지만... 인터뷰 내내 암만 봐도 뼈를 깎는 노력(초식)만 돋보였지 문화적인 콘텐츠(내공)는 비어있는 것 같은 느낌을 전달받게 되어서 허탈했습니다. 자신을 남들과 다른 부분을 만들기 위한 노력보다는 남에게 맞추기 위해서 자기를 잊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살아온 사람이라는 게 티가 팍팍 났습니다.
독립한 이후 비가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지도를 필요로 하게 될 거고요 그러므로 앞으로 그가 잘 될 수 있는 부분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의 그런 능력과 성실한 자세를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의 힘을 얻어서 또 다른 성공을 이뤄낼 것입니다. 할리우드 할리우드의 워쇼스키 형제가 홀로서기를 한 그를 부리는 첫 사람이 되겠고요. 그다음에는 또 다른 사람이 그를 이용하게 되겠지요. 아마도 몸이 힘들어 진입장벽을 가지는 액션 부문에서 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비의 어딘가 과장되고 작위적이고 과잉된 상태처럼 보이는 (아무것도 없던 사람이 성공한 이후에 생기게 되는) 표정으로는 다른 장르의 연기를 소화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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