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1
오디오 산업에서 지난 십여 년 동안 가장 활발하게 발전해 온 분야가 있다면 음원 파일을 재생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USB 인터페이스를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으나, 음악산업의 중심이 빠르게 스트리밍 기반의 음원 서비스로 자리 잡게 되면서 오디오 애호가들의 관심 대상도 네트워크 인터페이스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네트워크 오디오 시스템을 구성하는 NAS, 라우터, 스위칭 허브 같은 네트워크 구성품은 오래전부터 오디오 애호가들로부터 음질적으로 미숙한 부분이 지적되어 왔지만 이제야 겨우 오디오용 제품이 하나 둘 찔끔찔끔 나오는 초기단계라 할 수 있다. 그에 비해서, 오디오용 랜 케이블 시장은 이미 수년 전부터 여러 케이블 업체가 참여하면서 주목할만한 결과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는 발전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대열에 미국의 하이엔드 케이블 회사인 스텔스 오디오도 합류했다.
스텔스 오디오가 밝힌 자랑거리 중 하나는 디지털 오디오 케이블의 특성 임피던스를 자유자재로 맞춤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을 풀어서 설명하자면 스텔스 오디오 자체적으로 선재나 피복의 치수를 결정하고 지오메트리를 결정하고 제작해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토대가 갖춰진 스텔스 오디오는 다른 케이블 회사가 시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넓은 범위로 개발을 시작해서 최적의 설계에 이르기까지 촘촘하게 좁혀올 수 있다.
하지만 스텔스 오디오가 오디오 업계에서 이룩한 명성의 비결이 단지 남들보다 빠르게 개발할 수 있는 토대를 갖췄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품의 지향점이 올바르고, 필요한 수준을 앞섰고, 어려운 것이라고 여겨졌던 한계를 극복하고 달성할 수 있음을 제품으로 증명해 냈기 때문이며, 이런 가치와 능력을 오디오 애호가들이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스텔스 오디오 블랙 매직 V18 랜 케이블은 V16 모델의 개선모델로서, 전작에서 사용한 카본 함유 플라스틱 재질의 랜 단자 대신 메탈 재질의 랜 단자를 사용했다. 랜 단자 변경에 따라 케이블의 외경이 11.8mm에서 8.9mm로 줄어들었다.
세션 1 (케이블 번인 이전)
블랙 매직 V18 랜 케이블을 펨토 클럭으로 교체한 HP PS1810 스위칭 허브와 하드디스크를 내장한 브라이스턴 BDP-2 사이에 연결했다. MSB Signature DAC V를 클라세 CA-M300 모노블록에 직결하고 레벨 스튜디오 2 스피커를 통해서 음원을 재생했다.
그저 랜 케이블을 변경한 것에 불과하지만 오디오 시스템이 더 힘 있게 소리를 터트릴 수 있게 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뭉툭하게 반응하던 것이 힘이 한 곳에 실려 뚝하고 떨어진다는 느낌인데, 비유하자면 잘 마른 장작을 도끼로 팼을 때 장작이 쩍 하고 쪼개지는 것 같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세르게이 바비얀이 피아노 듀오로 연주한 Prokofiev for Two 앨범의 1번 트랙 로미오와 줄리엣 중 줄리엣의 죽음 (24bit 44.1kHz, WAV파일)에는 2대의 피아노로 낼 수 있는 포르테시모가 수록이 되어 있는데, 이 곡이 이렇게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깜짝 놀라 심장이 벌떡거리게 된다. 이렇게 임팩트 실리고 묵직하게 아래까지 내려가는 소리가 리코딩에 실릴 수 있고 재생이 될 수 있는지 상상하지 못했다. 필자가 사용하던 와이어월드 CAT8 크로마 랜 케이블은 소리가 사뿐사뿐하고 편하게 나와주는 경향이 있었고, 크로마 랜 케이블보다는 좀 더 일반적인 소리를 내주는 텔레가르트너 랜 케이블로 연결해 보아도 이렇게 묵직하면서도 힘이 실린 포르테시모를 낼 수 없었다.
피아니스트 바실리스 바르바레소스가 연주한 V for Valse 앨범에 실린 1번 트랙 리스트의 메피스토 왈츠 (24bit 96kHz, WAV 파일)를 재생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47초에 나타나는 포르테시모를 듣고 나면 머리를 벽에 부딪치기라도 한 것처럼 띵 해지게 된다. 두 대의 피아노도 아닌 한 대의 피아노에서도 이런 엄청난 포르테시모를 수록하고 오디오 재생 장치에서 재현할 수 있는 게 신기하다.
호기심으로 각종 비교 테스트를 해보게 되었는데, 랜 케이블을 아예 제거한다거나 유무선 공유기의 전원을 변경한다거나 스위칭 허브의 받침을 변경하기만 해도 이런 후덜덜한 소리를 재현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랜 케이블 변경이 재생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만 그렇다고 랜 케이블만으로는 오디오 시스템의 능력치를 신장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여러 조건이 서로 합이 잘 맞았을 경우에만 비로소 큰 일을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필자의 파일 재생 시스템은 랜 케이블을 통해서 음악 데이터가 전송이 되는 것은 아니어서 랜 케이블을 통해서 음악 데이터가 전송이 되는 시스템에 투입했을 때는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세션 2 (케이블 번인 이전)
GLV 레퍼런스 룸에 방문해서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블랙 매직 V18 랜 케이블을 Nucleus plus와 MSB Select II DAC의 렌더러 입력 모듈 사이에 연결했다. 파워앰프는 Viola Bravo II, 스피커는 YG Acoustics Sonja 2.2를 사용해서 룬 환경에서 음원을 재생했다.
오디오용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는 기존의 레퍼런스급 오디오용 랜 케이블과 비교했을 때 블랙 매직 V18 랜 케이블이 가지는 두드러지는 특성이라면 다이나믹스를 표현하는 폭이 매우 넓은 것과 고역이 열려있고 생동감이 잘 표현되고 디테일이 매우 잘 재생된다는 점을 꼽아볼 수 있다. 사운드 스테이지의 좌우가 넓게 벌어지고 앰비언스가 잘 표현된다. 음악의 뒷배경이 지저분하지 않게 재생된다. 포커싱이 선명하고 음악의 생동감이 뛰어나다.
그렇지만 풍요로움이나 편안함을 주는 부분은 잘 표현이 되지 않으며 까랑까랑 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것은 케이블이 거친 소리가 나거나 노이즈가 침투되어서 소란함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라 그보다는 케이블이 아직 몸이 덜 풀려서 경직되어 있고 울림이 풍부하게 펼쳐지는 것이 제한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추정된다. 이런 경직된 소리는 다른 부문에서 얻은 점수를 까먹고 균질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부연해서 설명하자면 다른 비교대상 랜 케이블은 스텔스 오디오 랜케이블처럼 대단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 요소가 골 고르게 80 퍼센트의 수준으로 재생되어 쏠림 없이 균질한 느낌을 주고 있다면, 스텔스 오디오 블랙 매직 V18 랜 케이블은 대부분은 95퍼센트 수준으로 재생되고 경직으로 말미암은 특성은 70퍼센트 수준으로 재생되는데... 95퍼센트 수준으로 재생되면서 성능이 향상되면서 랜 케이블이나 오디도 시스템의 부족한 부분마저도 잘 들리게 되어서 들쑥날쑥하게 느껴진다거나 장단점이 강하다는 인상을 받게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느낌은 스위칭 허브와 오렌더 W20 사이에 블랙 매직 V18 랜 케이블을 연결하면 곧바로 개선된다. 오렌더 W20으로 음원을 재생했을 때 블랙 매직 V18 랜 케이블이 가진 장점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까랑까랑하게 들렸던 것은 랜 케이블만의 탓은 아니고 Nucleus plus가 재생할 수 있는 음악 규모가 오렌더 W20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일부 관련되어 있다고 봐야겠다.
오렌더 W20를 통해 아이지 오가 지휘하는 레스피기 오케스트라 곡을 재생시켜보면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기량이 엄청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GLV 레퍼런스룸에 갈 때마다 매해 오디오로 재생할 수 있는 한계가 넓어지는 것을 느끼는데 이제는 오디오를 통해서 재생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곡의 재생 수준이 이렇게까지 완성도 높게 재생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어 벅차고 뿌듯해졌다. 하지만 이런 설레는 마음은 스텔스 오디오 블랙 매직 V18 대신 다른 랜 케이블로 바꿔 재생시킨 순간 곧바로 실망하게 된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기량이 떨어져 굼뜨게 연주하는 것처럼 들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명확한 차이를 발견하고 나면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다.
그리고 번외로 MSB Select II DAC에 연결한 파워케이블을 변경해 보기도 했는데 자기 소리를 너무 강하게 주장하는 이상한 파워케이블을 연결하는 경우 블랙 매직 V18 랜 케이블을 동원해서 어렵사리 올려놓은 소리의 경지가 허무하게 허물어져 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애초에는 랜 케이블에 오디오 신호가 흐르는 환경이 되어야 랜 케이블의 성능을 완전하게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랜 케이블로 오디오 신호가 흐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오디오 재생 능력이 높은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기만 한다면, 아니 그런 환경에서만 랜 케이블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되고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칭에 따라 스텔스 오디오 블랙 매직 V18 랜 케이블이 경직된 소리가 드러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런 경직된 소리가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인 것인지, 신호를 충분히 흘려주고 나면 개선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케이블 번인 전후 차이
스텔스 블랙 매직 V18에 데이터 신호를 충분히 흘려주기 위해 IPTV에 연결시켜서 하루 지나고 경과를 확인하고, 또다시 IPTV로 신호 찜질을 해주고 확인해 보는 식으로 몇 차례 공을 들이고 나니 경직이 풀렸다. 기억에 의지한 결과가 아니라 신제품과 1대 1로 맞비교한 결과이니 번인 전후 차이는 명백하다.
경직이 풀려 자유자재로 소리 날 수 있게 된 블랙 매직 V18 랜 케이블을 HP PS1810 스위칭 허브와 브라이스턴 BDP-2 사이에 연결해 들어본다.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른 도니제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 (24bit 96kHz, WAV파일)은 번인 이전에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호흡이 짧고 심박수 터져나갈 것처럼 빠른 상태에서 핏대를 높여 격정적으로 노래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번인이 된 이후에는 신에게 기도하는 심정으로 나는 이제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상태에서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는 노랫말에 걸맞은 톤과 감정으로 들리게 된다.
그리고 소프라노 엘리 아멜링이 1982년도에 녹음한 슈베르트 가곡집 (필립스 438 528-2, 16bit 44.1kHz, WAV파일) 중에서 ‘두 홀데 쿤스트, 인 뷔필 그롸우엔 슈툰덴...(그대 사랑스러운 예술이여, 얼마나 많은 암울한 시간 속에서...)’ 으로 시작하는 “음악에게” (An Die Musik)는 번인 이후에 엘리 아멜링의 미성이 고음역의 아름다움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넓은 대역이 잘 어우러진 전일적인 아름다운 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어 표현 능력이 한계치가 높은 케이블을 사용했을 때 소리가 스트레스 없이 능수능란하게 잘 나와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정숙함이 좋아 소신호와 디테일 표현이 잘 되고 숨 쉬듯이 편하게 소리를 피어나게도 할 수 있다. 정숙함을 얻기 위해서 차폐를 시도한 랜 케이블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답답한 소리도 나지 않는다.
맺음말
필자는 스텔스 오디오 블랙 매직 V18 랜 케이블을 접하기 전에 이전 모델 V16 랜 케이블을 접하고 감명을 받았다. 랜 케이블에 쉴딩을 시도해서 정숙함과 파워감을 얻으려 한 시도 (대표적인 제품으로 AIM사의 NA7모델을 꼽을 수 있다) 중에는 V16모델이 소리의 완성도가 가장 높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스텔스 오디오는 느닷없이 V18 모델을 출시하면서 V16 모델을 단종시켰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이제는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스텔스 오디오는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제품에 견줄만한 제품을 만드는 것에 목표를 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수준을 뛰어넘는 선도적인 제품을 만들고 싶었으며,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겨졌던 한계를 극복하고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필자는 열혈 오디오 애호가에게 시대를 앞선 랜 케이블을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필자가 이 케이블을 도입하면서 기뻐했던 것처럼 다른 열혈 오디오 애호가 분들에게도 이 케이블이 기쁨과 신뢰와 영감을 주는 대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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