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케이블 - 디지털 데이터 인터커넥트

블랙 캣 DIGIT 75 S/PDIF 디지털 케이블 (방문청취)

raker 2023. 5. 21. 11:14

2016/11/27

일루미나티 D-60 케이블 (후에 킴버로 팔려서 킴버 D-60 케이블로 알려지게 됩니다)은 특성임피던스 75 오옴을 맞춘 최초의 S/PDIF 디지털 케이블입니다. 디지털 케이블이 지켜야 할 정도를 확립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스타일~

이 디지털 케이블을 개발한 크리스 솜모비고는 그 이후에 Stereovox라는 케이블 회사를 차려서 케이블 제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당시 개인적으로 디지털 케이블 쪽에 궁금한 것이 있어 이분에게 이메일로 문의하기도 했는데 친절하게도 답장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명성을 날렸던 디지털 케이블에서는 그다지 인상 깊은 제품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Stereovox XV2나 XV Ultra S/PDIF 디지털 케이블을 브라이스턴 BDP-2와 DAC 사이에 연결했을 때는 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소리에 찰기가 없이 기름을 바른 듯 미끌거린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유일하게 괜찮게 여겨졌던 경우는 워드클럭 신호를 공급하는 용도로 연결했을 때뿐입니다. (오렌더 W20에 워드클럭을 공급하는 데 사용했을 때) 아니나 다를까 Stereovox 제품 중에서 주목받은 제품은 디지털 케이블이라기보다는 SEI-600이라는 RCA 아날로그 인터커넥트 였습니다.

국내에 크리스 솜모비고가 제작한 디지털 케이블이 수입된다는 소리를 들은 지 제법 오래되었는데 이제야 접해보게 된 것도 그가 제작한 디지털 케이블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져 있어서 그런 것일 텐데요... 단체구매가 108만 원에 팔리고 있는 블랙 캣 DIGIT 75 디지털 케이블은 낮아져 있던 기대감을 단박에 만회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소리를 들려줬습니다. 전작과는 달리 DIGIT 75는 눈에 띄는 단점이 바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디지털 케이블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하게 전체의 음악 재생 수준을 좌우하는 진폭이 큰 부분이며 잘못된 디지털 케이블의 선택에서 시작된 재생능력의 저하나 한계는 뒷단에서 제아무리 돈을 트럭으로 쏟아붓는다 해도 절대로 만회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케이블 선택이 쉽지 않습니다. 워낙 지뢰들이 널려 있어서 아주 애먹게 됩니다. 개중에는 소리는 술술 잘 풀려나오지만 심각한 음색상의 컬러링이 있는 경우도 있고, 윗대역은 매끈하게 잘 나오는데 아랫대역의 아티큘레이션이 뭉개지기도 하고, 힘차게 들리지만 물 없이 비스킷만 먹는 것처럼 건조하고 퍽퍽하고 거친 느낌이 나기도 하고, 소리가 예리하고 정확하지만 몸서리칠 정도로 냉기가 느껴지게 하기도 합니다. 미간이 움츠러들 정도로 소리가 거친 경우도 있습니다. 디테일이 사라져서 단순무식한 파워감만 돋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다가 AES/EBU 케이블은 어느 등급의 제품이건 포커스가 잡히지 않고 out of phase 상태를 연상하게 할 만큼 fuzzy 한 스테이지 이미지를 가지게 됩니다.

블랙 캣 DIGIT 75는 디테일이 잘 나와서 음악의 교감이 전달되는 데 지장을 주지 않고, 무게감도 잘 실리는 편이어서 표현의 깊이가 흐려지지 않고, 대역의 밸런스나 음색도 안정되어서 오래 들어도 지치지 않는 등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습니다. S/PDIF 케이블의 장점인 포커스가 잘 잡히고 정확한 스테이지 이미지를 가진다는 점도 빠질 수 없겠습니다. 이 가격대의 제품에서 손꼽을 수 있는 제품이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상한 AES/EBU 디지털 케이블을 청산하고 S/PDIF 디지털 케이블의 세계로 전향하고 싶다고 할 때 실패할 일이 적을 안전한 대안으로 추천해 볼만합니다. BNC 단자로 터미네이션 되어 있고, 자사에서 만든 XOX BNC-RCA 어댑터가 기본으로 제공되므로 단말처리에 대한 고민 없이 세상의 모든 조합에서도 연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완전 고급취향이라서 이 제품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성능이라는 측면에서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조금 더 쥐고 흔들었다면 저도 속절없이 당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취향이라는 측면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은선 계열 디지털 케이블에서 발견되는 밝은 소리가 감지되기 때문에 제가 오랫동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저 같은 극소수의 까탈스러운 사람들이 있어서 케이블 회사에서 때로는 터무니없게 느껴지는 고급 제품들을 개발해 두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P.S.
제가 지금까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오디오 음질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는 디지털 케이블은 SPDIF 케이블과 이더넷 (LAN) 케이블뿐인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하면 AES/EBU 케이블이나 USB 케이블은 음악의 에센스를 재생하는 데 있어서 변죽을 울리는 편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S/PDIF 케이블이나 이더넷 케이블을 유치하기 위해서 공을 들이는 것은 오디오 성능을 향상하는 데 큰 이득을 준다고 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