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09/11
카라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물이 새로 나왔습니다.
기존에 나왔던 허접한 내용과 달리 짜임새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영상물에 등장하는 수많은 연주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카라얀은 엄청난 완벽주의자입니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고 부단히 노력하고 헌신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 영상물을 보면서 그의 행적과 고민을 뒤쫓다 보면 그가 기차로 연주하는 걸 싫어하고 대신에 비행기를 직접 조종하는 것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겁니다. 카라얀은 요트를 선수처럼 몰 수 있었는데 파도에서 자연의 리듬과 페이스의 변화를 몸에 익혀서 연주에 활용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과시하기 위해서 비행기와 요트를 몰고 다니는 속물들을 싫어했다고 하는 걸 봐서 그는 과시욕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고 추구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의 기준이 높았고 스타일은 고전적인 방향이었던 것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휘자가 연주자들과 소통하는 방식은 지휘자마다 다르게 마련인데 클렘페러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서 화를 내서 단원들을 쩔쩔매게 했다고 하고 번스타인은 음악가로 변신해서 그가 음악화되는 편이었다는데요, 카라얀이 하는 리허설을 보면 마치 무용 선생님이 무용수에게 지도하고 주문을 하듯이 디테일한 부분까지 몹시 꼼꼼하고 까다롭습니다. 연주회를 위해서 수백 시간에 걸쳐 리허설한 경우도 있다고 하니 강박적인 수준인 것 같네요.
카랴얀의 만년에는 몸도 안 좋아지고 성격도 까칠해지고 여러 악재가 끼어있었던 건 사실입니다만... 그가 몇 년만 더 살았다면 오디오 역사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와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가 리코딩 산업과 대중에 끼친 막대한 영향력을 감안해 보면 그가 CD이후의 고충실 오디오 포맷이 제대로 산업에 뿌리를 박을 수 있도록 하는데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카라얀은 단원에게는 독재를 폈고 리코딩 산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부렸지만 기준이 높았던 독재자가 없어짐으로 인해서 고충실 오디오 포맷 발전에 헛바퀴가 돌지는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드는군요.
CD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충분하다고 할 수 있지는 않아서요. 하지만 세상을 둘러보면 제가 욕심이 과하고 기준이 높은 걸 깨닫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는 제 일부분이 카라얀의 높은 기준을 추구하는 점과 닮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이 영상물을 보면서 사이사이로 보여주는 기존 영상물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됩니다. 지난번에 못 지른 베토벤 교향곡 DVD전집 (도이치그라모폰)이 다시 아삼삼해집니다.
'공연, 연주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목할만한 신예 지휘자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0) | 2023.04.15 |
---|---|
벨리니 오페라 '청교도' 어째 순정만화 같은데... (0) | 2023.04.15 |
블루레이 타이틀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0) | 2023.04.14 |
마르타 아르헤리치 연주회[2008]에 다녀왔습니다 (0) | 2023.04.14 |
르네 플레밍과 롤란도 비아존의 라 트라비아타 (0) | 2023.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