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플레이어 외

메리디안 G08.2 CD플레이어 (리뷰대여)

raker 2023. 5. 30. 22:03

2009/03/17

메리디안은 원대하고 혁신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는 업체다. 그리고 그런 비전을 구현시킬 수 있는 핵심능력을 갖췄다. 미래지향적인 메리디언의 비전에 비하면 G시리즈의 CD플레이어는 보수적인 오디오 패러다임에 속해있는 제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이 제품은 오디오 애호가들이 훌륭한 메리디언의 디지털 기술을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대중적인 접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G08이 나온 지 벌써 5년이 되었고 메리디안은 몇 가지 변경을 한 G08.2를 내놓았다. 

G08은 기존의 메리디안 CD플레이어와 구별되는 특성을 가진 바 있다. 150 MIPS급의 처리 능력을 갖춘 DSP를 통해 44.1kHz, 16비트의 디지털 오디오 데이터를 176.4kHz, 24비트로 업샘플링 시켰고, 3단 버퍼링 시스템과 리클러킹 기술을 채택하여 지터를 억제시켰다. 또한 88.2kHz, 24비트로 업샘플링한 디지털 출력을 지원하기도 했다. 형광 디스플레이를 이용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도 신선한 시도였다. 

G08.2는 G08의 대부분을 물려받았다. 외관상으로 달라진 점은 트레이 부분이다. 트레이가 없어지고 그 자리를 슬롯이 차지하고 있다. 메리디안은 새로운 슬롯 인 드라이브가 예전 트레이 방식보다 더 신뢰성이 있고 또한 음질적인 면에서도 우위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아하게 스르륵 빨려 들어가는 슬롯 인 타입의 DVD드라이브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사용자는 좀 더 고급스러운 촉감과 시각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기존 트레이방식에서 트레이가 열리고 닫힐 때 발생하는 떨림과 소리 그리고 CD의 끼임에 대해서 민감하게 여겨오시는 분들이 은근히 많으신데 슬롯 인 로딩은 이런 분들께서도 호감을 가질만한 로딩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내부적으로 달라진 점은 메인 보드를 새로 디자인한 것과 디지털 필터의 알고리듬을 최적화시킨 부분이다. 대부분의 회로와 부품을 한 장의 PCB에 집어넣어 부품이나 전원 회로 등을 좀 더 경제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DSP의 신호 처리 속도는 예전과 동일하지만 예전에 비해 디지털 필터링을 처리하는 데에 현저하게 정돈된 알고리듬을 제공한다고 한다. 상급기 808.2를 개발하면서 새로 취득한 ‘apoldizing’ 필터를 G08.2에 채용된 DSP의 용량에 맞도록 맞춤처리 한 것이 그 비결이다. 이 필터는 위상 변화를 최소화하면서도 리플이나 프리에코가 생기지 않게 한다고 하며, 이 필터를 이용한 CD재생음은 스튜디오의 마스터링 스튜디오에서 듣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음을 들려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듣기 불편했던 1990년대 초반 도이치 그라모폰 녹음에서 그 차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메리디안 G08.2를 에어 K1-Xe프리앰프, 크렐 FPB300 파워앰프, 레벨 퍼포마 F50스피커에 연결시켜서 들어봤다. G08.2는 예전 메리디안 G08과 소리가 많이 달라졌다. 메리디안 G08이 일체형 CD플레이어에서 구현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던 수준의 해상력과 표현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중립적이라기보다는 앞으로 쉽게 튀어나오는 성격이어서 다른 제품과의 매칭이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하면 메리디안 G08.2는 든든한 맏형처럼 안정적인 베이스를 재생할 수 있게 되었고 디지털의 어색한 단점이 부각되지 않는 좋은 소리를 내준다. 

Jenifer Warnes의 Famous Blue Raincoat 앨범에 실린 곡을 통해서 이제는 드디어 메리디안 G시리즈 급의 CD플레이어에서도 아주 당당하고 펀치감이 실린 사운드를 제대로 재생시킬 수 있게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웬만한 CD플레이어에서 벌컥대며 거친 소리를 내주기 십상이던 도이치 그라모폰의 1994년도 녹음, 브람스 피아노 트리오 – 피레스/듀메이/왕 CD (DG 447 055-2)를 재생시켜 보았는데 소리가 이상하게 튀어나오지 않게 해 주어서 숙성된 기량의 연주를 방해받지 않고 집중하여 들을 수 있게 해 줬다. 그밖에 재생이 쉽지 않았던 여러 문제성 있는 음반들도 G08.2에서 무리 없이 재생할 수 있었다. 메리디안에서 디지털 필터를 설계하는 기술이 높은 완성도와 노련미를 가졌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또한 메리디안 G08.2에서 좋게 느낀 점은 업샘플링을 제대로 구사해서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지 않게 했다는 점이다. 업샘플링을 잘못 적용하는 경우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게 하는 왜곡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소리가 땅끝에서 떠있어서 공중에 부유하는 느낌을 준다거나 얼음판 위를 우아하게 미끄러져 흘러가는 식이다. 그런 인공적인 소리는 잠깐 동안은 즐거움과 상쾌함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신중하게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오랫동안 신뢰를 제공해 줄 수는 없다. 메리디안은 애초에 업샘플링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입장이다 보니 좀 더 심사숙고하여 이론적인 면에서나 실질적인 면에서나 문제가 없는 완성도 높은 기술로 업샘플링의 모범 답안을 제시하게 된 것 같다. 

이렇게 G08.2에서 좋은 점을 많이 찾고 보니 G08.2이란 이름을 너무 겸손하게 지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지금까지 G08.2가 보편성을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는 좋은 자질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설명드렸는데 그다음 단계라 할 수 있는 매칭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잠깐 거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G08.2가 G08과 소리 경향이 많이 달라진 만큼 매칭하는 케이블도 예전과는 달라야 한다고 본다. 예전 G08은 고역이 강조되었고 저역은 상대적으로 희미해서 고역 특성을 둔하게 만드는 케이블을 사용해서 맞춰보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G08.2는 저역이 부족하지 않으며 오히려 고역 쪽에 약간의 악센트가 더해주는 편이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인상이다. G08이 오디오퀘스트나 트랜스패런트 성향의 케이블을 연결하는 편이 어울리지만 XLO나 Kimber성향의 케이블은 피하는 것이 좋을 거라는 인상을 주었던 것에 비하면 G08.2는 정반대로 XLO나 Kimber성향의 인터커넥트와 상성이 좋고 오디오퀘스트나 트랜스패런트 성향의 케이블과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을 것 같다. 

오디오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기술적인 진전이 있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전의 문제점을 개선해서 보완하는 것만으로도 성능이 이전보다 좋아질 수 있다. 특히나 디지털 오디오는 그 발전폭이 크다. 이 얘기대로라면 항상 새 제품을 구입해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일은 제품은 만드는 사람이나 구입하는 사람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 새로운 모습으로 만드는 데에 초기 비용이 많이 드니 그 가격이 제품가에 반영되게 될 테고, 사용자는 올라간 제품가에 해당하는 만큼 성능이 좋아지기를 바라지만 성능 향상에 해당하는 부분에 배분되는 양은 제품가 인상분 중에서 일부분에 불과하게 되니 구입하는 사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오디오는 새 기분으로 전면적으로 바뀐 제품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기존 제품을 개선시킨 마크 2나 마크 3가 알짜배기인 경우가 많다. 훌륭한 만듦새는 그대로 물려받고 문제 부분은 찾아내 해결하고 세월에 따라 발전한 신경향을 받아들임으로써 가격에 비해서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G시리즈는 상급기 808 마크 2에서 개발한 좋은 점을 물려받을 수 있으니 그 쏠쏠함은 더할 바 없다. 
메리디안 G08.2는 메리디언의 상급기 808.2의 핵심 기술을 물려받음으로써 이 가격대에서 독보적인 성능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메리디안 G08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는 메리디안 G08.2가 이 가격대의 제품을 호령하는 선두주자가 될 제품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