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OTT 콘텐츠 감상

천년여왕 [1981-1982]

raker 2023. 3. 29. 19:38

2011/09/18

에피소드 41편짜리 천년여왕을 DVD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봤습니다.

예전에 TV에서 방영했을 때 흥미롭게 보다가 끝에 몇 부를 남겨두고 갑자기 종영이 되어 결말을 볼 수 없어 아쉬워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제로 종영된 이유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유해성을 주장하는 학부모 단체의 압력 때문이라는군요. 큰 흐름을 보는 눈을 가졌다면 작가가 인간 중심의 스토리를 담으려고 노력했던 것을 알았을 것이고 이 작품에 담고자 했던 인간에 대한 희망과 철학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이타심이다. 사람은 어려워질 때일수록 희망을 잃지 말고 서로를 도와야 한다 등) 발견해서 오히려 볼 것을 권장했어야 마땅했을 거라고 봅니다. 그 당시 어른들은 아이들이 보는 것 듣는 것을 무조건 못하게 막아야 안심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분들이나 저희나 그런 답답하고 꽉 막힌 시대에 살았던 거죠.

이 만화영화에 영감을 준 것은 일본 휘야희(輝夜姬;가구야히메) 설화 (대나무에서 태어난 절세의 미녀 가구야히메가 지구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여차저차하여 다시 달로 돌아간다) 외에도 '12번째 행성' (지구에 대홍수가 닥쳤을 때 신들이 인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서로 대립하게 되는 부분, 지구 재난을 피해서 배를 타고 우주로 피신하게 되는 부분), 1999년도 그랜드 크로스 재앙설 그리고 지구공동설(地球空洞說) 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용은 기억나시는 분도 계실 텐데요... 1000년에 한번씩 궤도를 도는 태양계 10번째 행성 라메탈은 1999년 9월 9일 9시 9분에 지구와 제일 가까와지게 됩니다. 그 엄청난 인력에 의해 지구가 파멸될 위협에 빠지게 되고요. 지구 연합이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천년 여왕과 천년 도적이라는 괴단체가 각기 뭔가 꿍꿍이를 가지고 활동하게 됩니다. 라메탈 행성 역시 지구에 기갑부대를 파견하지요. 이렇게 큰 흐름 속에 중학생 소년 하지메와 야모리 다이스케 (천년여왕의 친위대장이었지만 나중에 천년여왕을 축출하려 함)가 촉매 역할을 하여 극을 이끌어나갑니다.

단순히 지구재난을 심심풀이로 다룬 SF물이 아닌 것 같았고요 그보다는 인간성에 대한 작가의 희망과 철학이 담겨져 있어서 절절하게 느껴지는군요. 지구적인 스케일이지만 많이 보아온 할리웃 영화의 정서가 실려져 있지 않고요 스토리가 엮여 나가는 방식이나 인물의 사고는 아주 일본적인 사고에 기반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전국시대의 숙적가문 간의 갈등을 다룬 드라마에 현대적인 옷을 입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다시 봐도 훌륭한 장편 만화 영화인 것 같습니다. 플롯에 커다란 구멍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게 큰 흠은 아니었을 거라고 봅니다. 컬러로 만화를 볼 수 있었다는 것만 해도 즐거웠었던 시절인지라... 그리고 예쁘고 착한 누나가 나와주었으니까요. 스타워즈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이미 그때 일본에는 그에 맞짱을 뜰 수 있을 정도의 큰 스케일의 만화가 있었군요. 음악도 아주 제대로 만들었습니다. 다만 DVD에 수록된 사운드가 먹먹하고 영상은 맑지 않은 것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좋으니 음질과 화질에 아쉬움을 느낄 새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한국판 주제가와 극장판 주제가가 더 멋있는 것 같네요. 김국환이 전성기때 부른 칼칼한 천년여왕은 속을 확 훑고 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빈속에 소주 한 샷 털어 넣는 것 같은... 러블리하게 들리는 극장판 주제가는 42화 마지막 엔딩이 나오고 나서 들으면 딱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