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

Kiso Acoustic HB-X1 스피커 (리뷰대여)

raker 2023. 5. 31. 19:52

201908/16

오디오파이에 기고한 리뷰입니다.

- - - - - - - - - - - - - - - - - - -

일본의 포노 카트리지 업체 Lyra는 스피커 설계자 토루 하라씨를 중심으로 스피커를 개발하는 별도의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이 프로젝트가 성과를 냄에 따라 Kiso Acoustic 스피커 전문회사가 생겨났다. 


제품 콘셉트와 설계

현대 스피커 제작 경향은 몸통인 인클로우저의 울림을 최소화시키고 유닛의 성능을 향상하는 데 있지만, 토루 하라씨는 이와는 정반대로 인클로우저의 울림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악기의 울림통처럼 만들려고 했다.
그 이유는 기존의 스피커 제작 방식으로는 라이브 음악과 같은 생생함을 재현하지 못하며, 기존의 방법을 개량하는 것으로는 그 간격을 줄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제작 의도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나무 수종에 따른 음색에 대한 지식, 목공기술, 공진 제어 기술을 가진 업체의 협력이 필요했다. 기타 메이커로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다케미네 악기제작소가 스피커 설계에 참여했고 스피커 생산도 담당한다. 

HB-X1 인클로우저의 내부에는 흡음재가 없으며, 크로스오버 네트워크는 아래쪽에 마련된 별실에 수납하도록 되어 있어서 인클로우저는 공명통의 역할을 하는 데 방해를 받지 않는다.


HB-X1 스피커를 설계할 때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맨 아래쪽 옥타브(20Hz에서 40Hz에 해당하는)를 재생하는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대신 실제 악기로 낼 수 있는 최저음에 해당하는 40Hz를 재생할 수 있도록 했다. 
인클로우저의 사이즈는 작게 하고 베이스 리플렉스 방식을 채택했으며 우퍼는 피어리스제 100 mm로 결정이 되었다. 그 대신 스피커의 감도는 85dB로 낮은 편이다. 예쁘게 생기기만 한 앰프에 물려서는 제소리를 내줄 수 없다. 힘을 제대로 낼 수 있는 앰프를 사용해야 제소리를 내줄 수 있다.
트위터는 포스텍스제 17 mm 금속 트위터를 선정했다. 트위터는 흑단 재질의 혼과 결합이 되어 있다. 

배플의 폭을 여느 스피커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좁혔고 배플의 가장자리는 뒤쪽방향으로 경사지게 해서 회절현상으로 인한 음상이 뒤섞이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했다.

 


연결 오디오 시스템 소개

필자의 소스기기는 룬 코어로 뉴클리어스 플러스, 음악파일 스토리지로 브라이스턴 BDP-2, 룬 레디 네트워크 플레이어 MSB Signature DAC V로 구성되어 있다. 프리앰프는 사용하지 않았으며 클라세 CA-M300 모노블록 (AB클래스 증폭, 채널당 300와트)에 직결한 시스템이다.

Kiso Acoustic HB-X1은 전용 스탠드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스피커와 전용 스탠드 사이에 Kiso Acoustic에서 제공하는 투명 일래스토머 패드를 이용했었는데, 몇 곡 듣고 난 후에는 투명 일래스토머 패드를 제거한 상태로 재생했다. 일래스토머 패드를 제거한 후에 소리의 순도, 다이내믹스 표현력이 비약적으로 신장되었다. 그리고 대역 밸런스 면에서나 소리의 두께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려웠던 염려도 덜 수 있게 되었다. 본 리뷰에 언급이 된 특성은 전부 투명 일래스토머 패드를 제거한 상태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들어보기

Kiso Acoustic HB-X1 스피커에서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은 소리가 생생하다는 점이다. 여느 스피커는 소리가 일정 부분 파묻히는 것처럼 들리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지만, HB-X1 스피커는 그런 부분이 없다. 그래서 라이브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처럼 들린다.
이렇게 생생한 소리는 혼 스피커에서 들을 수 있다. 혼 스피커가 내주는 생생한 소리는 마술과 같지만, 방식의 한계상 음 높이에 따른 고약한 버릇이 있고 악기의 수가 늘어나면 어수선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마술을 펼칠 수 있는 음악 장르가 넓지 않다.
그리고 HB-X1과 비슷한 크기를 가지고 있고 혁신적인 설계를 시도한 어느 영국제 스피커도 이처럼 생생한 소리를 내줬다. 그 제품 역시 인클로우저 내부에 흡음재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생생한 소리를 내주는 점에서 여느 스피커에 비할 바 없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제품은 고유의 나무 통울림을 가지고 있었고 큰 음량에서 소리가 컨트롤이 되지 않고 값싼 악기처럼 삑삑 대는 한계를 보여줬다. 결국 그 영국제 스피커 또한 제한된 음량과 제한된 장르의 음악을 재생할 때만 남다른 매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HB-X1은 나무 통울림이 느껴지지 않고 음량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어수선해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HB-X1은 특정 음악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본격적인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체질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봐서는 HB-X1이 큰 음량을 소화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실제로는 큰 음량을 감당해 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악기의 편성이 늘어나고 포르테시모가 나오는 부분에서도 거친 소리가 나오지 않아 오랫동안 음악을 들어도 피곤해지지 않는다.
HB-X1은 작은 음량에서도 생생하면서도 디테일을 섬세하게 재생할 수 있고 큰 음량에서도 위축이 되는 것 없이 너끈하게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여느 스피커 이상으로 다이내믹 레인지가 크게 느껴진다. 그것은 남보다 더 크게 소리를 낼 수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더 작게 소리를 낼 수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넓은 다이내믹 레인지 덕에 HB-X1으로 음악을 들으면 좀 더 라이브에서 듣는 것 같은 소리처럼 느껴진다. 음량을 크게 하지 않더라도 대역의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고 들려줘야 할 소리는 다 들리는 것은 이 제품의 우수한 점 중의 하나다. 이런 특성 때문에 굳이 억지로 큰 음량으로 키워서 들어야 할 일은 생기지 않는다.

또한 HB-X1은 저역이 불필요하게 부풀어있지 않고 저역의 페이스가 둔하지 않다. 저역이 선명하다. 이렇게 우수한 저역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고역을 마스킹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HB-X1이 애써 만들어 낸 생생한 소리를 덮어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HB-X1은 좁은 배플 덕을 보아 이미징이 훌륭하다.

이런 여러 가지 특징이 한 군데도 무너지지 않고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덕분에 재생음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다. 2017년에 알파 리코딩에서 발매한 크쥐시토프 울반스키 지휘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24bit 48kHz, WAV파일)를 재생해 보면 공연장에 앉아서 연주을 듣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을 받게 된다. 다이내믹 레인지 넓어 고해상도 음원의 장점을 고스란히 표현할 수 있으며, 배플이 좁고 회절 현상이 제어된 스피커의 설계 덕에 스피커의 위치를 가늠할 수 없고 스피커가 사라지는 이미징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음량을 줄이면 좌석을 뒤로 옮겨 앉아서 듣는 것처럼 느껴지고, 음량을 높이면 앞 좌석으로 옮겨 앉아서 듣는 것처럼 느껴진다.

2017년에 24bit 48kHz 고해상도 음원으로 재발매한 휘트니 휴스턴의 I wish you love: More from the Body Guard 앨범에 실린 I will always love you를 들으면 갑자기 휘트니 휴스턴이 소환되어 노래 부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고, 전성기의 휘트니 휴스턴이 부르는 절묘한 노래에 넋을 잃고 빠져들게 된다.

그밖에 여러 리코딩을 재생하면서 각각의 리코딩에 이런 멋진 표현이 수록이 되었는지 발견하면서 놀라는 일이 거듭된다. 

HB-X1은 40Hz까지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고 이 사이즈에서 이 수준을 달성한 것만 해도 놀라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스피커로 파워풀한 록 음악을 듣는다거나 라흐마니노프의 뻑쩍지근한 피아노곡을 들을 때 대형 스피커에서 나오는 에너지와 여유를 만들어 낸다고는 할 수 없다. 스피커의 세계에서 물리적인 한계는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 사이즈의 제품과 대형 스피커를 맞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008년 체스키 레이블에서 발매한 Revisions: The Songs of Stevie Wonder (24bit 192kHz, WAV 파일)의 1번 트랙 You Haven’t Done Nothing에서는 베이스의 현 튕김이 풀어지지 않게 잘 제어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만, 베이스 몸통의 크기를 재현하는 점에서는 대형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에 미치지 못한다.

메탈리카의 1991년 리코딩 Metallica 앨범 (24bit 192kHz, WAV 파일)에 실린 Enter Sandman을 재생해 보면 20Hz에서 40Hz에 이르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느낄 수 있다. 공간의 룸모드를 자극하지 않아서 부밍이 없는 깨끗한 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머리가 혼미해지는 쏠림과 흥분은 맛보기 어렵다.

1994년 이글스 Hell Freezes Over 앨범(16bit 44.1kHz, WAV 파일)에 수록된 Hotel California Live를 들어보면 저역이 퍼지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으나 라이브 공간에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다.  

2018년도에 발매한 Vassilis Varvaresos V for Valse (24bit 96kHz, WAV 파일) 앨범의 1번 트랙 리스트의 메피스토 왈츠 리코딩에는 역사상 경험해 보지 못한 악독한 포르테시모가 실려있지만 HB-X1으로는 그 포르테시모를 완전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물론 수천, 수만 개의 음표 중 단 몇 개의 음을 완전하게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며, 나머지 부분에서는 몰입에 필요한 충분한 무게감을 가지고 재생할 수 있었다.


맺음말

HB라는 모델명은 소리 또는 울림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일본어 ‘響き(히비키)’에서 따서 작명한 것으로서, 모델명에도 스피커가 지향하는 점을 빠짐없이 담아냈다.

HB-X1의 특성을 요약하자면 실제 같은 소리처럼 순도 높고 생생하고 조화롭게 들린다. 좋은 악기가 그러듯이 나쁜 버릇이 없고 한계가 잘 드러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음악과 거리감이 줄어들고 친근감이 커지고 음악을 대하는 능력과 음악성이 향상된다.

물론 HB-X1은 콤팩트한 사이즈를 가지는 스피커이며 덩치 큰 스피커가 재생할 수 있는 완전한 스케일을 따라잡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한계를 뺀 나머지에 대해서는 그 어느 제품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만큼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악기형 스피커는 오래전부터 오디오계에 거론되어 왔으나 지금까지 누구도 그런 제품이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토루 하라씨는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아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전설의 유니콘 같았던 악기형 스피커를 이 세상에 남기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