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플레이어 외

에소테릭 UX-3 유니버설 플레이어 (리뷰대여)

raker 2023. 5. 28. 09:17

2005/07/11

도요다의 특화된 브랜드로 렉서스가 생겨났고 삼성은 PAVV라는 별개의 고급 브랜드를 만들어 낸 것처럼 VRDS메커니즘으로 유명한 티악에서 하이엔드 소스기기 시장을 겨냥하고 만든 브랜드가 에소테릭이다.
에소테릭은 분리형 CD전용기 P-70/D-70와 유니버설 플레이어 DV-50, 그리고 일체형 SACD플레이어인 X-01가 호평을 받은 바 있다.
X-01에 비디오 재생부를 장착한 것이 UX-1이 되겠는데 1400만원에 달하는 부담스러운 가격으로 고민하는 사용자를 고려하여 SACD멀티채널 아날로그 아웃풋을 지원하지 않는 대신 가격을 낮춘 것이 UX-3이 되겠다. 그 대신 IEEE1394 디지털 아웃풋을 장착하여 IEEE1394 입력단이 지원되는 AV리시버를 통해서 SACD 멀티채널 오디오를 즐길 수 있도록 우회로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소니의 플래그쉽 SACD플레이어인 sony scd dr1에서 최초로 등장한 것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실질적인 면에서 보자면 UX-3이나 DR1의 멀티채널에 대한 적응력은 미약하다고 봐야겠다. 왜냐하면 현시점에서 이 가격대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사용자가 사용을 고려하는 등급의 AV프로세서에서 IEEE1394가 지원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수준을 낮춰서 AV리시버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IEEE1394 입력을 지원하는 AV리시버가 IEEE1394에 최적화되려면 수 차례의 제품 사이클이 지난 후에야 가능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UX-3의 소리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macho"다. 용암이 분출되는 활화산이 연상될 만큼 에너지로 꽉 차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아무리 저역의 규모와 힘에 굶주린 사람이더라도 더 이상을 바랄 필요는 없을 정도다. 에밀 길렐스가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열정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돌로 뒤통수를 쾅 두들겨 맞은 듯 머리가 핑 하게 돌게 하고 심장이 쿵쾅거리게 한다.

간혹 특정 대역을 강조해서 번쩍댄다거나, 해상력이 낮기 때문에 단조롭고 조야한 소리를 내는 제품에서 느껴지는 왁자지껄한 과장된 소리를 듣고서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착각이 들 때가 있는데 UX-3을 그런 제품과 비교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일이다.
UX-3는 시끄럽고 요란한 소리를 낸다거나 튀는 일 없이 대역 밸런스는 잘 잡혀 있을 뿐만 아니라 고역은 대단히 매끄럽게 연마되었고 세련되었다. 저역은 타이트하고 단정하다. "바닥을 긁어내는"이라는 수식에 적합할 만큼 재생음의 규모가 크고 건실하다. 탑로딩 방식을 사용하지 않은 재생기 중에 탑로딩에 필적하는 저역의 충실성을 재현하는 것은 네임의 드로어 방식과 티악의 VRDS 메커니즘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효과적인 설계와 충실한 부품투입으로 노이즈 레벨을 낮추어 놓는 데 성공해서인지 음악에서 배경은 매우 정숙하고 고급스럽다. 해상력이란 부분에서도 최신 디지털 오디오 제품이 가지는 수준을 모자람 없이 만족시키고 있다. CD나 SACD 둘 다 비슷한 경향의 소리를 내주는 편이다.

그러나 UX-3는 구미의 하이엔드 제품과는 다른 면이 있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서 변경되는 실제 소리의 굴곡 (envelope)을 재생한다는 면에서 보자면 일본제품이 보편적으로 추구하고 집착하고 있는 성질을 공유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정적인 소리에 대해서는 매우 정갈하고 맵시 있고 공들여 연마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데 반해서, 시간의 변화에 따라서 변경되는 다이내믹한 소리의 굴곡에 대해서는 충실하게 재생한다기보다는 일부러 관성을 가지게 해서 뒤에 나올 소리를 균일하게 묻어 버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UX-3는 보편성과 객관성을 추구하는 여타의 제품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독특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언급되어야 될 것 같다. 에너지가 넘치는 소리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었는데 이번에는 부작용에 대해서 언급하려고 한다. 어쿠스틱 악기가 때로는 인공적으로 들린다거나 음악의 섬세한 부분을 가리는 때가 있다.
미도리가 연주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을 SACD로 재생해 보면 바이올린의 활 끝을 통해서 전달된 진동이 바이올린 몸통의 떨림으로 확대되어 소리가 나온다는 어쿠스틱 한 느낌을 주지 않고, 활을 갖다 대는 시늉만 하면 소리가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콘서트홀에 방문해서 듣는다는 느낌을 준다기보다는 운동장에서 PA시스템을 통해서 확성된 바이올린을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뮤직비디오나 공연에서 립싱크시킨 영상을 TV수상기를 통해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면에서는 와디아의 사운드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스콜피온즈의 holiday라거나 퀸의 love of my life 같은 록발라드에서는 부서지기 쉬운 애절함이 깃들인 감정마저도 강렬한 사운드에 파묻히면서 피상적으로 들리게 된다는 아쉬움이 든다.

UX-3는 piano보다는 forte를 지향하는 제품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어쿠스틱 악기의 소리를 재생하는 데에는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 테지만, 불패와 불멸의 강렬한 소리를 찾아다니신 분에게는 확실한 대어감으로 손꼽힐만한 제품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