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05/09
푸치니의 대표작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오페라 투란도트는 기괴 잔혹 판타지 로망 변태 막장 오리엔탈 스펙터클 인생역전 한탕 사이코 적인 요소가 버무려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두암에 걸린 푸치니가 3막의 류가 부른 마지막 아리아까지만 만들어 놓고 암치료 하러 외국에 갔지만 치료에 실패하고 사망하는 바람에 곡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1926년 초연에는 푸치니가 작곡한 부분까지만 공연했고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연에는 알파노 완성판(1926년)을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푸치니가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옮기지 못하고 남겨놓았던 피아노 버전의 스케치를 가지고 땜빵해 둔 알파노판은 급작스럽게 끝난다는 느낌을 주는 점이 단점이라고 하네요. 리카르도 샤이는 루치아노 베리오의 완성본(2001년)을 사용했습니다. 루치아노 베리오가 작곡한 부분에서 다소간 일체감 붕괴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급작스럽게 끝난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네요.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면 베리오 판본의 어색한 오케스트레이션을 푸치니답게 복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봅니다.
미완성작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살아남고 사랑받은 오페라의 저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타타르국의 왕자로 남부러울 것 없이 누리고만 살다가 왕조가 망하면서 이웃나라를 전전하는 떠돌이 신세가 된 칼라프. 옆나라에서 목숨을 건 테스트를 통과하면 공주의 남편이 되어 단박에 인생역전 신분상승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생기가 돌면서 목숨을 걸고 베팅하기로 합니다. 눈이 돌아간 칼라프는 그런 헛된 욕심을 만류하는 핑, 팽, 퐁 대신의 회유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그를 아끼는 사람의 만류도 단칼에 무시합니다. 그를 아끼는 사람이 그의 목숨을 지켜주기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보면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칼라프는 잔혹한 투란도트 못지않은 소시오패스로군요. 나락에 떨어져서 쓴맛을 본 왕자병 걸린 사람이 다시 그 자리를 되찾기 위한 집념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건지 미처 몰랐습니다.
막장의 끝을 보여주는 스토리지만 참으로 화려하고 멋있게 꾸몄네요. 류의 아리아 '얼음으로 뒤덮인 당신' (Tu che di gel sei cinta)과 칼라프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 (Nessun dorma, 제대로 번역하면 '아무도 잠들지 말라'라고 합니다)가 이 오페라를 대표하는 아리아입니다.
올해로 38세가 된다는 소프라노 마리아 아그레스타는 류(Liu)의 역할에 제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공연물에서는 핑, 팽, 퐁은 짜증 나는 존재로 느껴졌었는데(오죽하면 일부 공연에서는 이 부분을 건너뛰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공연에서는 그렇지 않았네요. 칼리프 왕자 역할을 맡은 테너 알렉산드르 안토넨코는 처음에는 강렬한 파워를 보여주었는데 후반부에는 다소 피로한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이 오페라에서는 어떤 배역이 극한배역인지 모르겠습니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는 테너가 극한배역이었는데요.
2017년에 제작한 블루레이 공연물 타이틀답게 영상과 카메라 연출과 음향 모두 훌륭합니다. 그동안 나온 투란도트 공연물 블루레이 타이틀 중의 갑 오브 갑이라고 불러줘도 될 것 같습니다.
24비트 5 채널 DTS HD 마스터 오디오 사운드 좋습니다. 일단 이 맛을 본 사람이라면 귀 버린 겁니다. 스테레오 재생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우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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