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18
스트라빈스키 작곡 봄의 제전은 발레곡이기는 하지만 음악공연에도 많이 사용합니다.
도시적인 컨트롤을 하려는 지휘는 이 곡의 에센스를 표현하는 데 어울리지 않습니다. 원초적인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열심히 해도 망친 것이지요. 그렇지만 강렬한 힘과 역동성을 표현하려다 보면 자칫하면 균형과 조화를 무너트릴 수도 있어서 지휘자의 역량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BBC Music Magazine 2013년 5월호에서 Orchestal Choice로 뽑힌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하모니를 지휘한 리코딩은 컨트롤을 중시하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니가 너무나 잘 다듬어서 소리를 만들어 내려고 욕심을 부렸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연주자 조합단체가 아니랄까 봐 진지하게 연주하는데... 그것이 좀 지나쳐서 이 곡의 느낌을 제대로 살려주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독일스러운 철저함이 잘 맞지 않는 곡이 아닌가 싶네요. 곡에 몰입이 되고 두근대게 하기보다는 냉정하게 꼬투리를 잡을 것이 없나 지켜보게 되는 편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와는 상반된 접근법은 게르기에프가 키로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리코딩입니다. 이 경우는 지휘자가 음악적인 캔버스에 음악적 물감으로 마음껏 페인팅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소리를 잘 다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며 그 음을 냈을 때 심리적인 효과가 무엇인지 캐치해서 적절한 타이밍과 강도와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그 덕분에 연주에 빨려 들어가서 음악이 만들어내는 세계에 몰입되게 만들게 됩니다. 너도 없고 나도 없는 물아일체의 영역에 잠깐 접신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게르기에프의 연주 이후 십수 년 동안 좋은 연주들이 나타나고는 있습니다만 게르기에프 수준의 강령술사는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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