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연주 감상

리골레토의 진수

raker 2023. 4. 19. 19:48

2015/03/16
꼽추인 늙은 광대 리골레토는 못된 주인 만토바 공작을 만나 귀족들에게 냉소 섞인 조롱을 해대어 적이 많아지게 되었지만... 딸을 위해서라면 험한 일이라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절절한 부성애를 가진 인물입니다. 그러던 중 딸 질다는 교회에서 만토바 백작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됨으로써 비극이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최고의 리골레토 공연실황은 2008년 드레스덴 슈타츠오퍼 공연물 (제리코 루치직이 리골레토를 맡고 디아나 담라우가 질다 역을 맡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레오 누치가 리골레토를 맡고 니노 마카이체가 질다역을 맡은 2008년 파르마 테아트로 레조 공연실황을 볼 수 있었는데요. 드레스덴 슈타츠오퍼 공연물과 비교해 보면 다른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리코 루치직이나 디아누 담라우가 노래하는 것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이라면 레오 누치와 니노 마카이체는 연극적인 부분이 강화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아마도 CD 발췌본으로 가사를 보지 않고 듣기만 하는 경우라면 제리코 루치직과 디아누 담라우의 노래를 좋게 평가하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자막이 있는 영상을 함께 보는 상황이라면 감정이 잘 이입되어 심금을 울리는 레오 누치와 니노 마카이체의 노래를 최고로 꼽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마어마한 공연이었습니다. 이 공연의 한 가지 단점은 악역을 맡은 만토바 공작이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매력적인 꽃미남 학생 같은 느낌이에요. 하지만 그 덕분에 질다가 첫눈에 만토바 공작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게 전혀 어렵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는 원작의 의도를 잘 살린 멋진 캐스팅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와 대조되는 공연실황이라면 만토바 공작이 가진 거대한 파워로부터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처럼 압도되어 버리는 파바로티 출연 레골레토 공연실황을 꼽아볼 수 있겠습니다. 관객을 단숨에 스톡홀름 콤플렉스에 빠지게 할 정도. 그러나 나머지 배역이 그 급으로 따라오지 못하면 파바로티의 거대한 그늘에 파묻히는 리골레토 공연이 될 수 있다는 점은 함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