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연주 감상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 성공기원 음악회

raker 2023. 4. 17. 20:30

2012/10/10
지적장애인들이 참가하는 동계올림픽이 평창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Together in Harmony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성공기원 음악회는 동계스페셜올림픽 개최일을 100일 앞두고 열렸습니다.
무료로 참관할 수 있었는데 통상적인 음악회 시간보다 일찍 시작했습니다. 지적장애인들의 참관을 배려해 주다 보니 그런 게 아닌가 싶지만 회사 끝나고 출발하면 혹시라도 눈여겨 둔 손열음의 연주를 듣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버스, 지하철, 지하철 환승할 때에도 오래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막판에 지하철에서 나오는 방향을 잘못 잡아 버스정류장에서 먼 곳으로 나왔네요.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음악회에 5분 정도 늦게 도착했습니다. 피아노 연주를 한 곡 놓쳤습니다만 나머지는 다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지적장애인으로 구성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객원 연주자 포함)의 연주는 곡 선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의 경우는 선곡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프로연주자들이 해야 하는 곡인데 이들에게는 무리였습니다. 듣기가 무척 괴로웠습니다. 다행히도 마지막 곡은 잘할 수 있는 곡을 선택했네요.

그다음에는 손열음의 피아노와 크누아심포니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1악장 연주가 있었습니다. 손열음의 명성은 들어왔지만 실연을 접한 것은 처음이었는데요. 국가대표급 피아니스트 자리를 꿰찰 수 있는 파워와 테크닉과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 세대의 대형 피아니스트인 서혜경의 불꽃 연주에 버금가는 것 같네요. 오케스트라의 금관악기가 잘 받쳐줘서 흔들림이 없었고 손열음이 펼치는 아우라로 그 무대를 완전하게 장악했습니다. 기립박수감이었는데 제가 소심해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기립박수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저도 일어났을 텐데요.
그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현상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피아노를 처음 두드릴 때의 소리와 10분 이상 두들기고 난 이후의 피아노 소리가 달라지더군요. 처음에는 딱딱하고 여운이 짧았던 것 같은데 나중에 가면 더 윤택하고 풍부해져서 황금빛 소리가 납니다. (농담이 아니므니다.) 어제는 피아노가 열받아서 소리가 그렇게 바뀌었나 보다 여겼는데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해머의 펠트 부분이 호되게 두들겨 맞아 탄성이 달라졌을 때의 효과인 것 같습니다. 유명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챙겨서 콘서트 투어하고 나서 사용했던 피아노를 판매하면 수집가들이 프리미엄을 얹어 구입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인터미션 이후에는 바이얼리니스트 강주미와 크누아심포니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사라사테의 카르멘주제에 의한 환상곡을 연주했습니다. 강주미는 인터미션 앞에 연주했던 바이올린오케스트라 합주에서 바이올린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김남윤과 함께 양쪽 포스트를 맡아서 그쪽 바닥에서의 위상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활을 잡고 있는 자태도 매력적입니다. 바이올린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비주얼입니다. 그런데 제 인상으로는 대장금의 수라간 최상궁(견미리)이나 유리가면의 아유미 같다는 느낌입니다. 일관되게 한 방향으로 일생을 건 사람이라는 건 알겠지만 천재성이란 부분이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저만 엉뚱하게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그 곡에는 바이올린오케스트라에서 잠깐 솔로를 맡았던 한 남성 바이얼리니스트에게 딱인 곡이었다 싶었거든요. 그가 솔로로 등장했던 시간은 이십 초도 안 되는 동안이었지만 관능과 도발을 느낄 수 있어서 그 이후로 계속 뇌리에 박혀있게 됩니다. 그런 미친 존재감을 내주는 사람이 장금이나 유리가면의 마야에 해당하는 사람이겠지요. 그 음악을 듣는 내내 대장금이나 유리가면 같은 드라마가 펼쳐지는 음악드라마를 상상했습니다.


마지막 곡은 차이코프스키 작곡 1812년 서곡이었습니다. 금관악기군이 잘 되려나 염려했지만 속이 후련하게 끝을 내줬습니다. 좋은 연주를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크누아심포니오케스트라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오케스트라입니다. 미래의 한국오케스트라가 어떤 연주력을 가지게 될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귀가하는 지하철에서 앉아올 수 있어서 끝까지 해피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