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21
'반딧불의 묘' (1988)는 여러 가지로 께름칙해서 보지 않았습니다. 미군의 일본 본토공습으로 민간인이 희생(사망 30만 명, 부상 50만 명)된 것을 정면으로 다루다 보니 일본 국민들도 전쟁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여서 괘씸하다는 일각의 지적도 신경 쓰였고, 어린아이가 죽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도 싫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굳이 볼 의욕을 느끼기 어려운 난감한 소재의 영화라고 봐야겠습니다. 그런데도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폭격으로 고아가 된 오누이가 숙모의 집에서 잔소리를 듣게 되자 집에서 뛰쳐나오게 되는 상황이 그 당시의 세계의 상황과 일본이 전쟁을 벌이겠다는 무모한 선택을 상징하고 있다는 해설을 보게 되어서입니다.
해군장교를 아버지로 둔 14살의 세이타는 남부러운 것 없지만 그가 사는 마을이 미군의 소이탄 공습을 받아 불바다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심한 화상을 입게 되어 숨지게 되고 응석받이 4살짜리 여동생(세츠코)은 이제 세이타가 감당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이 오누이는 숙모의 집에서 묵을 수 있게 됩니다. 숙모는 세츠코를 돌보는 것만 하고 있는 세이타에게 국가와 지역사회가 어려우니 도움이 될 활동(방화활동 등)을 하기를 권유하지만 세이타는 그 말을 듣지 않습니다. 말이 먹히지 않자 숙모의 잔소리와 구박은 점차 늘어가고... 옹졸한 성격의 세이타는 급기야 숙모의 집을 떠나기로 합니다. 빈정 상한 숙모도 굳이 말리려 하지 않는군요.
오누이는 방공호에 기거하면서 처음에는 자유를 만끽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현실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다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레퀴엠'(2000, 원제 Requiem for a Dream)이 연상되네요. 상황은 계속 나빠져서 최악의 상태를 향하게 됩니다. 세츠코가 영양실조에 빠지게 되었을 때 숙모에게 용서를 빌고 숙모의 집으로 들어갔더라면 파국을 막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옹졸한 세이타는 주변의 권고를 듣고도 끝까지 무시합니다.
세이타는 주변의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지 않고 무모한 결정을 해서 자신을 따르는 동생을 해치게 되고 본인도 그 길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어쩐지 70여 년 전의 일본수뇌부가 내린 결정과 닮은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숙모의 잔소리와 구박은 해외열강 국가들의 일본에 대한 압박을 상징하고, 응석받이 세츠코는 전쟁 전의 일본국민들을 상징하고, 옹졸하고 엉뚱한 결정을 내린 세이코는 전쟁을 벌이기로 한 일본 수뇌부를 상징하고 한다고 봐야겠습니다.
감독은 관객들이 세이타가 내린 잘못된 결정을 비판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하는데 그런 예상과는 달리 일본 내에서의 반응은 세이타가 불쌍하다며 동정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영화의 시점이 세이타 기준이다 보니 관객이 정서적으로 세이타에 완전하게 몰입이 되어 그렇게 반응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성이 마비될 정도의 쎈 스토리여서 관객이 이성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무리는 아닙니다.)
저는 청소년기의 자녀를 둔 학부모라 그런지 세이타의 미숙하고 옹졸한 결정에 비판적인 편입니다. 14살의 아이가 혼자 결정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면 얼마든지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14살이면 중학교 2학년 밖에 안 돼요. 그때는 남이 주입시킨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아동기적인 사고에서는 벗어날 수 있는 시기이지만... 아직까지 사려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시기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보완을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점이 안타까웠는데... 더 안타까운 것은 지금 이 순간 일본이 다시 중2병이 도졌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에는 일본인에게 정신적으로 부모 역할을 하는 일왕이 침묵하지 않고 제소리 내고 있네요. 70여 년 전에도 그랬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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