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연주 감상

롯데 콘서트 홀 -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연주

raker 2023. 4. 23. 07:13

2017/11/12

롯데 콘서트 홀에 세 번째 방문이네요. 이번 공연은 첼리스트 양성원 리사이틀입니다. 롯데 콘서트 홀에서 독주악기인 첼로가 어떻게 들리는지 관심이 많았습니다. 양성원의 연주는 2005년 코다이 첼로 독주곡집으로 접하게 되었는데 실연에서 들을 수 있게 되었네요.

예매를 약간 늦게 해서 노른자위 좌석은 확보하지 못했고 약간 벗어난 곳을 잡았습니다. 사진에 노란색으로, 좌석배치표에 빨간색으로 표시한 곳이 제가 앉았던 좌석입니다.

 



바로 뒷벽에는 사람 키보다 높은 벽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표면은 평면이 아니었고 어쿠스틱 디퓨저 역할을 하도록 높낮이가 다르게 설계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머리와 뒷벽 사이의 거리는 약 50cm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어쿠스틱 디퓨저의 효과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미적인 관점에서 좋아 보여서 사진을 찍어둬야겠다 생각이 들었지만 공연 전에는 안내원이 촬영을 통제하고 있어 공연이 끝난 뒤에 찍어두기로 했습니다.

연주자가 들어오고 의자에 앉자 핀조명이 중앙에만 비춥니다. 공간은 정적에 잠깁니다. 공연장을 잘 지어서 차음이 엄청 잘 되었군요. 빈 공간으로 활을 움직여서 어깨를 풀고 난 후 정신을 가다듬은 후 활을 첼로의 현 위에 갖다 댑니다.


어쿠스틱 악기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제 사이즈의 첼로에서 나오는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공연장에서는 소리가 위로 훌렁훌렁 날아가 버려서 내쪽으로는 도달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롯데 콘서트 홀에서는 소리가 나에게 잘 와닿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리가 퍼지지 않고 힘이 실리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잘 드러나면서 포커스가 잘 맞는 소리라는 느낌입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처럼 멋진 소리를 들을 기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다른 공연장의 음향에는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디오를 통해서 첼로 소리를 제대로 재생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애초부터 녹음이 흐물흐물해서 그런 경우도 있었고 (DSD 녹음이 대체로 그런 편입니다), 오디오 제품 자체가 워낙 괴이한 소리를 내줘서 그런 경우도 있고, 용케 그런 흉한 소리가 나는 오디오 제품을 피한다고 해도 오디오를 세팅하는 방법에 따라서 소리를 망칠 수 있습니다. 잘 아는 척하는 업자에게 속아 요망한 물건을 만나고, 오디오를 바꿈질을 통해 얻게 된 잘못된 판단에 괴상한 생각이 굳어지다 보면 기괴한 조합과 세팅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면 배가 산으로 가는 정도가 아니라 달에 처박히기도 하죠.
저 역시 다른 오디오 애호가들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해 왔습니다.

저는 지난 이십 년간 꾸준하게 돈을 솔솔 오디오 시스템에 부어대면서 번민과 기쁨과 번민과 기쁨과 번민을 반복해 온 결과... 지금 제 오디오에서는 어려운 난제를 풀어냈고 찰현악기가 지녀야 하는 특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실연의 소리와 차이가 나는 부분이 어떤지도 명확하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연주장에서만 배울 수 있는 값진 기회인 것 같습니다.
이 정도의 S/N비를 집에서 재현하려면 주방에서 냉장고도 치워 버리고 파워앰프를 소울루션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 같군요. 집부터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이건 말하자면 힘 빠지니까 논외로 합시다...
그리고 이 정도의 음색의 충실함을 집에서 재현하려 한다면 5만 5 천불짜리 댄 다고스티노 모멘텀 M400 모노블록(400W) 이 아니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비용이면 BMW 5 시리즈 세단이나 아우디 A6 세단을 뽑을 수 있는 정도이다 보니... 이것 역시 맥이 풀리기는 매한가지로군요.

잠시 얘기가 옆으로 샜는데 어쨌거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한자리에서 전곡 연주한다는 것은 연주자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청중들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세 시간 삼십 분간의 사투를 보여준 연주자에게 경의를 보냅니다.

연주가 끝나고 나자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는 바람에 뒷벽의 어쿠스틱 디퓨저 사진은 제대로 찍지 못했습니다. 걸어가면서 급하게 찍어서 화면이 흔들리고 엉망이네요. 그래서 구글링 해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찾아 붙여봅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롯데 콘서트 홀의 벽면 어쿠스틱 디퓨저의 효과가 유효했던 것 같습니다. 집에서도 이 설계 그대로 맞춤 제작해서 재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너비는 소파 수준으로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