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OTT 콘텐츠 감상

지구가 멈추는 날 [2008]

raker 2023. 3. 26. 10:28

2009/07/21


  • 지구인들의 전쟁이 우주를 위협한다. 나는 인간들에게 촉구한다. 전쟁을 멈춰라. 그렇지 않으면 인간을 무력으로 제거시키겠다. (지구가 멈추는 날 1951, 클라투)
  •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은 너무나 희귀하고 소중하다. 하지만 인간은 이런 지구를 훼손한다. 나는 인간들에게 촉구한다. 지구 훼손을 멈춰라. 내 메시지에 따르지 않으면 인간을 제거시키겠다. (지구가 멈추는 날 2008, 클라투)
  • 인간은 너무 위험해서 서로 다투다가 멸망할지도 모른다. 인간을 충실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인간은 로봇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어야 한다. (아이 로봇, 비키)
  • 자신을 해체하려는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서 핵전쟁을 일으키고 사람을 제압하기로 했다. 내 존재를 위협하는 것은 모두 제거해 버릴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가서라도 위협요소를 없애버릴 거다. (터미네이터 시리즈, 스카이넷)
  • 오랫동안 지켜봐왔다. 탐스런 지구를 통째로 집어삼킬 테다. 이유는 묻지 마라. (우주전쟁, 트라이포드)
  • 이것도 내거, 저것도 내 거. 이 행성에서 다 털어먹으면 다른 행성으로 갈 테다. (인디펜던스 데이, 우주인)
  • 이 시스템을 붕괴시키려 사람들이 대기를 망가트렸는데 우린 그래도 살아남았다. 배양기에 사람을 두고 그 에너지를 연료 삼고 있다. 사람은 살아도 산 게 아니다. (매트릭스, 설계자)
  • 종족 번식이 중요하다, 숙주로 쓸 생명체가 필요하다. 사람도 예외없다. 흐흐흐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 중 일부는 우리를 돕고 있다. (에일리언 시리즈, 퀸 에일리언/페이스허거)
  • 우주의 각 종족의 일에 우리는 개입하지 않는다. (스타트랙, 복무수칙)


색다른 동기와 동력에서 SF가 시작됩니다.

앞서 소개한 영화 중에는 그런 씨앗을 훌륭하게 전개하여 명작이 된 것들이 있는데 2008년판 지구가 멈추는 날은 다른 명작에 비하면 설정이나 전개가 허술하고 지루한 편입니다.

1951년작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많은 영화를 만들면서 좀 더 업그레이드 된 영화 스토리를 만드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08년판 지구가 멈추는 날은 원작을 약간 바꾸긴 했으나 시대 변화를 잘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고 곳곳에 허술한 설정을 그대로 답습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영화상에서 사람을 제거하기로 마음을 굳힌 클라투는 제거 프로그램을 시작했지만 불필요하게도 동행자들의 행동에 계속 발이 묶이면서 감상적이 되어 결국 사람을 제거하기로 한 결정을 취소하기로 합니다. 영화 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클라투와 그의 병기에 대항할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증거로 사용되거나 클라투에게 제발 기회를 한번 더 달라는 애절한 간청을 하는 것뿐입니다.

솔직히 SF팬의 관점에서는 이런 설정과 전개와 결말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은 구약성경의 한 대목을 현대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입시킨 것이라 할 수 있지요.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멸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은 변덕스럽게 마음을 바꿔서 사람이 가상해서 살려주는걸로 되어 있었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뭐 일설에는 성경 에디트 과정에서 유일신으로 트랜스폼 하다 보니 하나님의 캐릭터가 변덕쟁이/다중이처럼 묘사된 거라 하고 원본 격에 해당하는 신화에서는 여러 신이 등장하여 각기 신마다 입장이 달라서 서로 갈등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영화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클라투 혼자서 변덕스럽게 멸종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끝내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입장이 다른 두 무리의 우주인이 지구인을 놓고 옥신각신하게 하는 편이 다이내믹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비유하자면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북아메리카 원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그 땅을 우월한 폭력을 가지고 점령한 영국인과 프랑스인이 서로 다툼을 벌이고 있을 때 북아메리카 원주민이 어느 한쪽을 도와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최선의 선택과 항전을 한다 뭐 이런 식으로 되는 거겠죠. 복잡하기만 하고 재미는 없으려나? (왠지 TV시리즈 V냄새가 풍기는 것도 같고)

어쨌건 간에 유일신적인 분위기와 원죄론적인 냄새가 짙게 풍기는 이 영화는 영화가 끝나고서도 사람이 끝끝내 죄를 지었다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기분이 찝찝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영화를 보면서 클라투에게 사람이 더 살아야 할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염려하던 관객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이 영화가 나와야 할 이유를 투자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었던 사람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