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연주 감상

음탕한 세상에 다녀온 듯한 오페라

raker 2023. 4. 16. 13:19

2012/03/03
이 오페라의 경우 투우사로 상징이 되는 폭력과 파워를 숭상하는 분위기가 깔려 있고, 마음먹은 남자를 꾀어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앞뒤 가리지 않는 무절제한 욕심, 가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집착으로 살인을 선택하는 등, 원작 배경 자체가 사람의 어두운 쪽의 본능을 지향하고 있고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오페라의 분위기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연출자 칼릭스토 비에이토 (오페라계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는 오페라 전체를 음탕하고 끈적대도록 한 연출 했습니다. 그래서 보고 있노라면 이 세상을 까맣게 잊고 어딘가 다른 세상으로 빠져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보고 나면 아주 피곤해 지고요.

연출 의도는 충분히 알겠는데... 미카엘라까지 돈 호세에게 들이대는 설정은 지나친 감이 있는 것 같군요. (미카엘라가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걸 행동으로 표현하도록 연출한 거라면 할 말은 없겠지만요) 그래도 이번 연출은 이전 연출작에 비해서 선정성과 폭력의 강도가 줄어든 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오페라들은 어떤 해체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재결합을 시도했는지 궁금해지네요.

퍼포먼스 면에서 봤을 때 성악가들의 연기력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특히나 카르멘 역을 맡은 위리아-몽종의 경우에는 사랑이 식은 이후에 차가워진 부분에서 연기력이 더 빛났던 것 같습니다. 나쁜 여자에 잘 어울린다고 해야겠죠. 그에 비해 돈 호세를 유혹하는 것은 그렇게 까지 치명적이지는 않습니다. 사람을 홀리기에는 위리아 몽종은 나이도 약간 들었고 ㅎ 사자처럼 매섭게 생겼죠 ㅎㅎ. 에스카미오 역을 맡은 어윈 슈로트 (안나 네트렙코의 남편이기도 하지요)는 지금껏 본 카르멘 중에서 가장 빛나고 멋진 에스카미오가 아닌가 할 정도로 사람을 빠져들게 합니다. 미카엘라의 경우에는 미스캐스팅인 것 같습니다. 보시면 그 이유를 바로 아실 수 있습니다.

한편, 화면에 담기는 촬영연출과 음향의 경우에는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1막의 몹씬은 연결이 약간 매끄럽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출연진들이 공연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였을 것 같은데 어쨌거나 편집을 잘해주었으면 약점을 가려주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공연물을 상업용으로 내놓는 것을 감안하면 편집의 미숙함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소리는 풍성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메마르게 들리네요. 음량을 크게 해도 좋아질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설치해 둔 마이크의 거리가 멀었고 공연장의 소음이 많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빈약한 음향은 보다가 포기할까 싶은 생각을 들게 하지만 그나마 호기심과 한글 자막이 실려있어서 끝까지 볼 수 있게 도와준 것 같습니다.

이 오페라를 보고 나서 후유증?으로 음탕한 꿈을 꿀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