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연주 감상

키신 피아노 리사이틀 [2006] 다녀왔습니다

raker 2023. 4. 14. 11:04

2006/04/11
모처럼 가본 피아노 리사이틀 공연이었습니다.
공연을 기다리는 동안 혼자서 멀뚱 거리기 뭐해서 사람들 얼굴을 봤더니 기대에 차있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앉은자리는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 1층 맨 끝에서 두 번째라 무대에서는 20여 미터 떨어져 있어서 소리가 잘 안 들리면 어떨까 염려가 들었습니다.
키신의 노스승이 앉은자리가 1층 무대 앞에서 세 번째 줄 중앙이던데 여기가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 홀에서 제일 명당 자린가 보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공연장에서 가급적 가까이서 피아노 듣는 걸 선호하는 편입니다.

키신의 등장, 그런데 영상물에서 보던 것과는 달라진 것 같습니다. 살이 불어나서 잠깐 볼로도스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제 자리에서는 고역이 공간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들리고 있어서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셈이지만 그래도 오디오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고역의 롤오프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네요.

베토벤 소나타 3번과 26번은 기괴한 연주라서 베토벤 스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베토벤 소나타는 폴리니가 얘기했던것처럼 열린 공간이 표현되는 것(정확한 표현은 잘 기억나지 않음)이 베토벤 답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키신은 그런 여백의 공간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집요한 밀착수비를 보는것 같기도 하고 전투용 쌍두전차를 모는 장교가 말들에게 숨쉴틈을 쥐지 않고 고삐를 쥐고 독려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베토벤 소나타 연주 내내 불편하게 느꼈었는데 객석의 반응을 보니 저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가타부타하지 않고 용감무쌍하게 전진하는 것에 매료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분이 납신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하기로 작정을 했는지는 그건 잘 모르겠네요.

그러다가 인터미션 이후에 쇼팽 스케르초를 연주를 듣기 시작했는데... 어! 이건 장난이 아닌 겁니다.
음반에서는 듣기 힘든 연주였습니다. 아쉬케나지의 전성기 때 공연실황 녹음에서 느꼈었던 복잡 다난한 감성적인 요소들이 연상되었습니다.
귀한 경험하고 가는구나 생각했는데 그냥 보내려니까 아쉽더군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저만 가진게 아닌지 그때부터 시작한 커튼콜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열되었습니다.
가열찬 박수와 환호는 붉은 옷만 입혀놓으면 붉은 악마 응원단에 버금갈 것 같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런 느낌 같은 것을 계속 느낄 수 있었습니다.
키신은 간간히 이게 뭐야 하고 놀란 표정을 보였지만 어쨌든 청중과 교감을 나누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고
앙코르곡을 할 때는 중앙 빈자리까지는 진출할 수 있었는데 앞에는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앞까지는 가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지하철 막차시간에 맞추느라 일곱 곡까지만 듣고 빠져나왔습니다.
로비로 나와보니 사인을 기다리는 기나긴 행렬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덟번째 앙코르곡을 하는 모습이 모니터에 비치더군요.
그때가 커튼콜을 한 지 70분이 경과된 시점이었는데
나중에 기사를 보니 제가 나온 이후로 15분 동안 더 커튼콜이 이어졌다고 하고 앙코르곡을 총 10곡을 해줬다는군요.
주중에 하는 것처럼 1시까지 지하철이 운행했다면 다 듣고 갈 수 있었을 텐데...

저는 그다음 날 키신이 인터뷰하는 것을 꿈속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