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OTT 콘텐츠 감상

코쿠리코 언덕에서 [2011]

raker 2023. 4. 1. 10:02

2012/10/12
이 애니메이션은 고도경제성장기(두 자릿수의 경제성장률로 동양의 기적이라고 불렸던)를 맞은 1963년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일본인의 로맨스를 다룬 것 치고는 애매하지 않고 직선적으로 전개되는군요. 원작이 그래서인 걸까요? 학생이라서 그렇게 하기로 한 걸까요? 아니면 만든 사람이 여성을 표현하는 감각이 무뎌서 그런 걸까요? 아버지의 상실을 감당하고 시련을 이겨내는 주인공의 모습을 담고 싶어서? 여성을 진취적으로 묘사하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그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일까요? 아니면 영화의 톤을 고려해서 그런 걸까요?
아마도 그런 요소들이 조금씩 다 영향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감정이 서서히 커지다가, 뜻밖의 사건을 통해 막막한 상황으로 빠져들었다가, 주체할 수 없게 고조되어 어쩔 줄 모르게 치닫게 되었다가, 일시에 해소하게 만드는 흐름을 큰 덩어리로 잡아냈는데...
이런 매크로스코픽한 전개는 어색하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잘 어울리기까지 한다고 느껴집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과 시각에서 연애의 감정을 다룬 애니메이션으로 '귀를 기울이면'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사춘기 여성의 예측할 수 없는 까탈스러운 심리를 마이크로스코픽하게 묘사했지요.
애니메이션 연애영화를 보면서 스릴을 느끼고 SF에서 그려내는 외계의 세계보다 더 이상한 세계에 진입하는 듯한 강도 높은 충격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볼 사람이 없겠지만... 귀를 기울이면에서 그런 체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변화무쌍하고 예측이 안 되는 시시각각의 감정의 변화를 꼼꼼하게 포착하는 능력이 예술인 것 같습니다.

너무 단순화시킨 것 같지만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남성이나 중장년층을 겨냥한 시대극 TV 드라마를 본 것 같은 느낌이고 (예를 들면 '국희'), 귀를 기울이면은 연애를 대리체험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두 애니메이션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르듯이 너무나도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 비교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봅니다. 귀를 기울이면이 먼저 나왔다고 해서 이것을 기준으로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평가하려는 것은 부당한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 두 영화 모두 괜찮았고 둘 다 소중하게 아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