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리아빈 연습곡 Op.2 No.1
2019/05/18
룬을 사용하면 연주자에 따른 해석을 비교하는 게 편해집니다.
룬의 Go to composition 기능을 설명하는 데 사용했던 스크리아빈 연습곡 Op.2 No.1으로 비교 청취해 봤습니다.

John Ogdon, 1971년 발매 앨범 수록 (16bit 44.1kHz)
극단적으로 느린 템포를 선택했으며 슬픔과 센티멘탈을 극대화시킨 연주. 지금까지의 삶과는 달라져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기대할 곳도 없게 된 것을 묘사하는 것 같아 무서워진다. 이 정도면 멘털이 깨지고 희망을 잃어 완전히 무너진 상태...
Shura Cherkassky, 1993년 발매 Encores 앨범 수록, 1982년 녹음 (16bit 44.1kHz)
기본적으로는 느린 템포를 선택했지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부분에서는 부분적으로 빠르게 표현하고 묘사를 위해 필요한 부분에서는 충분히 템포를 느리게 잡아 표시해서 센티멘탈을 표현하려고 함. 낭만주의적인 연주가 아닐지...
Vladimir Horowitz, 1986년 발매 Horowitz in Moscow 앨범 수록 (16bit 44.1kHz), 1986년 녹음
굳이 느린 템포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애조 띈 표현을 애써 강조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템포를 미묘하게 감았다가 풀었다를 반복하여 운율 같은 것을 제공하여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곡의 분위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우아하게 다루면서도 지루하게 만드는 법은 없다.
다른 연주자들이 선택한 접근방법과는 많이 차이가 나는 것 같고 호로비츠의 눈부신 매력이 느껴진다.
Khatia Buniatishvili 2014년 발매 Motherland 앨범 수록 (24bit 96kHz), 2013년 녹음
감정적인 표현을 두드러지게 하려고 하기보다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투영하려는 의도가 보이고 소리를 풍부하게 들리게 하는 주법을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적극적이긴 한데 감성적으로는 그렇게 많이 와닫는 연주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러시아 감성의 곡인데 프랑스 감성으로 해석한 것 같다는...

Andrei Korobeinikov, 2014년 발매 Scriabine: Complete Etudes앨범 수록 (24bit 44.1kHz), 2013년 녹음
애조 띈 느낌을 강조하지 않고 템포 변화도 눈에 띄게 감지되지 않은 연주. 연주시간이 길어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는데 오디오 시스템의 디테일 재생이 좋지 않으면 더 악화되어 들릴 수 있다. 오디오 시스템의 디테일 재생이 좋을 경우 음이 아름답게 들린다.
Vladimir Horowitz, 2015년 발매 Horowitz Return to Chicago 앨범 수록 (24bit 96kHz), 1986년 녹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으나 모스크바 공연실황 때보다는 시카고 공연실황은 어둡고 침울한 면이 부각되는 편. 호로비츠가 아끼는 곡이라지만 이 연주에서만큼은 눈부신 매력은 덜 느껴진다.
Yevgeny Sudbin, 2007년 발매 Yevgeny Sudbin Plays Scriabin 앨범 수록 (24bit 44.1kHz), 2006년 녹음
소리가 가녀린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수드빈은 가급적이면 빠른 템포로 헤쳐나가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은 먹힌 것 같다. 하지만 내성적인 부분이 보이는 부분에서는 빠른 템포로 표현할 수 없었고 이 부분에서 수드빈이 가진 소리가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이런 앙상함은 안쓰럽게 느껴지지만... 생각을 달리 하면 다 날아가거나 연소하고 나서 별로 남을 게 없는 곡의 악상과 소리의 앙상함이 절묘하게 맞는 면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Vladimir Ashkenazy, 2015년 발매 Scriabin: Vers La Flamme 앨범 수록 (24bit 96kHz), 2014년 녹음
뮤지컬 캣츠의 그리자벨라처럼 늙고 지친 노쇠함이 느껴진다.

Vanessa Benelli Mosell, 2016년 발매 Light: Scriabin, Stockhausen 앨범 수록 (24bit 96kHz), 2015년 녹음
상처 입은 사람을 껴안아주는 것 같은 포용성이 느껴지고, 그래서 기대고 싶게 된다. 물론 그도 나처럼 힘겨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의지가 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피아노 연주에서 보살(菩薩)을 느끼게 될 줄이야!
Sviatoslav Richter 1999년 Great Pianist Vol.84 앨범 수록 (16bit 44.1kHz)
강철로 만들어진 것 같은 사람인데... 이 곡에서는 크리스털 공예품을 만든 것처럼 오묘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상식을 뒤집는 파격적인 연주.